방민호의 살며 생각하며 ④

오늘 오랫만에 밤하늘을 보았다. 가느다란 초승달이 구름에 흐렸지만 춥지 않다. 이제 설도 지났고 곧 봄이 오려는가 보다.

이번 겨울에는 눈도 많이 오지 않고 춥기만 했다. 그래도 평창에는 제법 눈도 쌓였고 인공 눈을 만들어 동계 올림픽은 거뜬했다.

옛날을 생각하면 확실히 우리나라는 겨울 되면 눈나라였다, 얼음나라였다. 까마득히 어릴 때 눈 가지고, 얼음판 위에서 놀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연못 대신 방죽이라고 불렀던 곳, 벼 농사 짓고 물 가두어 놓은 곳, 이런 곳들이 옛날에는 아이들 놀이터였다. 썰매를 만들어 타도 단순하지 않아서 무릎 꿇고 타도록 넓적하게 만든 썰매도 있고, 외날 썰매로 서서 스키를 타듯 타야 하는 것도 있었다.

팽이도 얼음판 위에서 날렸던 기억도 나고, 쥐불놀이도 눈밭, 얼음판 위에서 하던 것도 생각난다.

그때는 다들 해질 때까지 친구들과 바깥에서 놀다 부모님이나 친척 어른이 찾으러 올 때쯤 되어야 집으로 놀아갔다. 손발이 시려웠던 시절이었다. 겨울이면 손이 곱다 못해 터져 안티프라민을 바르던 옛날이었다.

지금은 86세로 연로하신 아버지와 함께 스케이트 장 갔던 일도 떠오른다. 겨울에 임시로 물을 가둬 얼려 만든 스케이트 장. 아버지는 우리 식구들을 데리고 그런 야외 스케이트 장에 데려 가셨다. 아들들이 노는 걸 보시고 흥이 생기셨는지 직접 스케이트를 타시는데, 맙소사, 뒷짐을 지고 허리를 숙이고 스케이트를 쓱쓱 밀고 가시는 게 아닌가.

그건 다른 사람들이 타는 스케이트와는 완전히 달랐다. 어린 마음에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어쩐지 남부끄럽게 느껴졌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바로 진짜 스피드 스케이팅 폼이었다. 고등학생 때 럭비 선수였고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하신 아버지다운 늠름한 모습이셨던 것이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잘 마무리됐다. 평창에서는 주로 눈 위에서 하는 경기들을 하고 강릉에서는 얼음 위에서 하는 경기를 한다.

빙상 경기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번에 설상 경기라는 말을 새롭게 들었다.

빙상 하면 역시 스피드 스케이팅이나 쇼트 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이다. 김연아 씨의 피겨 스케이팅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말이다.

이상화 선수 눈물 흘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값진 은메달을 따내고도 복받쳐 오르던 눈물 뒤에는 지난 몇 년 동안의 피나는 연습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 선수는 더없이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힘겨운 훈련 과정을 십 년 이상 지속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사람이 최선을 다했을 때만 보여줄 수 있는 표정이나 행동, 그것을 이 선수에게서 엿볼 수 있었다.

여자 쇼트트랙 3천m 계주에서 2연패를 달성했던 순간도 떠오른다.

뭐든 열심히 하면 잘하는 한국사람들이지만 동계 올림픽에서 그렇게 스케이팅도 잘하는 걸 보면 역시 봄, 여름, 가을 말고 겨울도 있는 이 나라의 기후 덕이 아닌가 한다. 우리네 몸 속에 그 긴 겨울을 얼음 지치며 어린 시절을 보낸 오랜 문화적 체질이 배여 있는게 아니던가.

올림픽 중에도 뉴스에 오르내리는 소식들은 살벌한 것도 많았다. 평창 올림픽이 끝났다. 겨울도 끝, 곧 봄이다. 따뜻한 봄바람처럼 우리네 마음도 계절의 순환을 타야 할 것 같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