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모하는 일에…`
문태준 지음
문학동네 펴냄·시집·8천원

“우리는 서로에게

환한 등불

남을 온기

움직이는 별

멀리 가는 날개

여러 계절 가꾼 정원

뿌리에게는 부드러운 토양

풀에게는 풀여치

가을에게는 갈잎

귀엣말처럼 눈송이가 내리는 저녁

서로의 바다에 가장 먼저 일어나는 파도

고통의 구체적인 원인

날마다 석양

너무 큰 외투

우리는 서로에게

절반

그러나 이만큼은 다른 입장”_ 문태준 시 `우리는 서로에게` 전문

고요한 시선으로 세상을 지그시 바라보는 담백하고 서정적인 시로 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문태준(48) 시인이 7번째 시집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문학동네)를 펴냈다.

문태준 시인은 김천 출신으로 유심작품상,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서정시학작품상, 애지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문학인들이 뽑은 “가장 좋은 시” “가장 좋은 시집”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며 한국 현대 시단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3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은 화려한 조명과 관심 속에서도 자신만의 속도와 보폭으로 우직하게 써내려간 63편의 시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이번 시집에 이르러 더욱 깊어지고 한결 섬세해진 시인은 한국 서정시의 수사(修士)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믿음직스러운 시 세계를 펼쳐 보인다.

특히 한 단어이거나 짧은 수식 구조의 제목만을 가져왔던 지난 시집들과 달리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라는 문장형의 제목은 더욱 낮아지고, 여려지고, 보드라워진 시인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자 삼라만상을 `사모`의 마음으로 올려다보는 시인의 시선을 잘 대변해주는 문장이기도 하다.

 

“문태준의 시를 읽을 때는 마치 숨결을 엿듣듯, 숨결을 느끼듯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의 시는 모래알처럼 스르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리거나 새털구름처럼 허공에 흩어져버리고 만다. 그의 시는 어린아이의 숨결, 어머니의 숨결, 사랑하는 연인의 숨결처럼 맑고 온유하며 보드라운 세계로 열려 있기 때문이다.”_이홍섭(시인), 해설 `숨결의 시, 숨결의 삶` 중에서

시인은 `흰 뼈만 남은 고요`처럼, 아끼고 아껴 남겨놓은 단어로 시와 삶을 지어 건넨다. 때로 그 지극한 무구와 순수는 동심으로 가닿기도 하는데, 그가 자주 사용하는 꽃, 돌, 물, 산, 해, 나무와 같은 시어는 우리가 태어나 처음으로 듣고 배운 단어와도 닮아있다. 시인의 순정한 목소리를 따라가다보면 비워내고 덜어낸 자리에서 솟아나는 풍경을 만나게 될 것이다. 말이 사라진 곳에서 오히려 들려오는 이야기들에 귀기울이게 될 것이다. 나뭇가지가 조금만 진동해도 함께 떨리고, 부사 하나에도 깜짝 놀라며, 종결 어미의 변화에 완전히 달라지는 뉘앙스를 느끼는 시인의 경험은 고스란히 우리의 체험이 될 것이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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