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수<br /><br />전 포스텍 교수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

하루는 대기업에서 대형 버스를 몰고 와서 교수들을 데리고 공장을 견학했다. 아침에 출발하면서 참석자 이름을 기업 직원이 체크하기 전에 사과를 구했다. 교수들을 잘 몰라 정교수, 부교수, 조교수 순으로 호명해야 하는데 가나다 순으로 호명하겠으니 양해해 달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기업체에서는 직위 별로 부르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것이다. 단체에서 야유회를 할 때도, 흔히 직원들이 먼저 나와 야유회 시설들을 설치하고 준비한다.

`상사`들은 나중에 나타나 뒷짐지고 구경하거나 평상 서로 대화하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만 한다.

야유회에서도 `상사` 부인들과 직원 부인들이 쉽게 어울리지 않는다. 상사는 야유회에서도 상사이고, 상사 부인은 부인들 사이에서도 상사 부인이다.

한 번은 기업의 남자 임원과 그의 방에서 대화하고 장소를 이동하게 됐다. 서류가 들어있는 상자를 함께 옮겨야 하는데 여직원을 불러 상자를 들고 따라오게 하는 것이 아닌가?

여직원이 자신의 상자를 들려 해도 옆에 있는 남자 임원이 손수 들어줄텐데, 자기 서류 상자를 여직원을 시켜 나르게 하다니 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에서 빌딩에 들어가고 나올 때 뒤에 따라오는 사람을 위해 문 잡아주는 것을 보기 드물다. 뒤에 누가 따라오는 줄 알면서도 뒤를 쳐다보기는커녕, 본인만 들어가 버린다. 엘리베이터에 들어가고 나갈 때도 비슷하다.

미국에서는 흔히 앞사람이 문을 열고 뒷사람이 먼저 들어가도록 문을 붙들고 기다려 준다. 뒤에 들어가는 사람이 노약자, 여자인 경우는 예외가 없다.

아는 사람들의 조직과 사회에서는 계급의 고하가 철저하다. 그러니 계급의 고하가 분명치 않은 공공장소에서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된다.

학계에서 기술혁신 개발기관으로 제일 유명한 곳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MIT의 미디어 랩(Media Lab)일 것이다.

그 랩에는 25개 정도의 연구팀이 있는데, 각 팀을 주도하는 연구 책임자들 모두가 박사학위를 갖고 있지는 않다.

미디어 랩의 현 총괄 책임인 일본계 미국인 조이이또는 2011년에 임명 당시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벤처 기업가다. 40년 이상 랩에 있었고 지금은 부 책임자 겸 연구실 책임자도 박사학위가 없다.

한국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한국에서는 학위가 있어야 하고 지위 서열 단계를 밟아야 한다.

미디어 랩의 웹에 연구팀 책임자들이 소개되어 있다. 책임자들 이름과 연구팀 이름만 적혀 있다. 박사인지 아닌지, 교수인지 연구원인지, 정교수인지 부교수인지 소개되어 있지 않다. 직함과 서열이 분명히 표시되는 한국의 관행과 너무도 다르다.

혁신 대학교육으로 잘 알려진 올린(Olin) 공과대학의 교수 명단을 봐도, 알파벳 순으로 나열돼 있고, 총장 등 요인들도 알파벳 순으로 중간 중간에 끼어 있을 뿐이다. 한국의 어느 학과를 방문 했는데, 벽에 학과 성원들이 소개돼 있었다.

위에 학과장, 부 학과장, 정교수, 부교수, 조교수, 직원 순으로 적혀 있었다.

최근 아래 다리가 좀 부어 오른 것 같아 주치의를 찾아갔다. 의사는 원인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들을 물었고 나와 거의 30분을 사용하였다. 가능성있는 여러 원인들을 내게 알려주고, 나는 어떤 치료 방법을 선호하는지 묻기도 했다. 내게 매우 흡족한 의학 상담이었다. 상담이 깊어지면서, 한국에서 병원에 가 치료도 받고 의사와 상담도 했었지만, 의사가 이렇게 자세히 환자와 상담하기는 드물 것이라고 생각됐다.

한국에서는 시간도 매우 짧지만, 일반적으로 의사가 환자에게 설명하고 묻는 기회가 거의 없다.

그 다음 주에 병원으로부터 설문지를 받았다. 그 설문은 환자가 의사의 스킬에 만족하는지, 그를 능력있는 의사로 보는지, 내 상태에 적합한 치료를 했다고 보는지 등 의사의 일반적인 능력 평가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놀란 것은 의사가 내 말을 귀담아 듣고 어떤 치료를 할 것인지, 왜 진행하는지 잘 설명해 주었는가라는 질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