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주 먼 섬`정미경 지음문학동네 펴냄·장편소설·1만2천원

소설가 고(故) 정미경은 지난해 1월 18일 작고하기 전까지 5권의 소설집, 4권의 장편소설을 남기며 한국소설사에 독자적인 자리를 만들어 왔다. 이상문학상과 오늘의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정미경은 늘 새로운 이야기를 갈구했고 인간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끊임없이 인간에 대해 탐구했고 새로운 직업이나 사회환경 등에 대한 호기심을 거두지 않았다.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양한 층위에서 들여다보았다. 무엇보다 한 편의 소설도 허투루 써내지 않았다. 그가 떠난 지 1년, 화가이자 그의 남편인 김병종이 그의 집필실에서 찾아낸 한 편의 소설이 세상에 선보인다. 어디에도 발표된 적 없는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 `당신의 아주 먼 섬`(문학동네)이다.

`당신의 아주 먼 섬`은 남도의 어느 작은 섬에 얽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삶의 다채로운 양상들을 세밀하게 펼쳐 보이는 일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답게, 정미경은 섬을 떠났으나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드라마를 세심하고 따뜻하게 그려낸다. 오래전 자신이 나고 자란 섬을 떠나 예술가로서 자신의 성공만을 좇는 연수는 고등학생 딸 이우와 사사건건 부딪친다. 이우가 불의의 사고로 친구 태이를 잃고 상담실과 병원을 전전하며 방황하자 연수는 결국 섬에 귀향해 살고 있는 어린 시절의 친구 정모에게 이우를 부탁한다. 정모는 점차 시력을 잃어가며 삶에 대한 욕심도 잃어가는 중이었지만,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내려온 섬의 소금 창고에서 묘한 기운을 느낀다. 마침내 정모는 소금 창고를 도서관으로 꾸밀 무모하고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 정모에게 소금 창고를 내준 친구 태원은 섬의 유지인 영도의 아들로 연수와 사귀었던 사이이고, 정모는 남몰래 연수를 마음에 두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정모는 이우와 함께 도서관을 만들어가며 차츰 자신을 어지럽힌 과거와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앞으로의 일들을 마주할 용기를 가진다. 이우 역시 정모와 그리고 말 못하는 섬 소년 판도와 생활하며 태이에 대한 기억을 슬픔이란 그릇에 담긴 따뜻함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판도가 선물하는 침묵과 손바닥에 써주는 다정한 말들에 야릇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수익성 없는 일에 인생을 낭비하는 정모가 못마땅한 영도는 개관이 임박한 도서관을 원상 복구시킬 것을 요구하는데….

`당신의 아주 먼 섬`은 손바닥 안에 삶의 희망을 쥐고 사는 사람들의 간절함에 대한 이야기다. 건너갈 희망이 있을 때 삶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각자의 눈은 모두 다르다. 하나하나 떼어 한 편 한 편의 소설로 엮어도 될 만큼 인물들의 사연이 얽히고설켜 있지만, 누구의 삶도 소홀히 흘려 볼 수 없는 까닭이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 궤적에 침잠할 줄 알았던 정미경식 소설 쓰기의 장점이 돋보인다. 모래 언덕에 퍼질러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손바닥에 고, 마, 워, 라고 쓰는 손길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그러니까 한 순간도 삶을 망쳐버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소박하지만 강렬한 바람을 섬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풀어낸 것이다. 공간뿐만 아니라 질주하는 듯이 빠르고 정확하게 이어지던 문장에도 변화가 느껴진다. 배경으로 상정한 전남 신안을 작가가 실제로 오가며 소설을 쓴 탓인지 행간에도 도시적인 차가움보다는 멀리 바다를 내다보는 듯한 여유가 엿보인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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