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 살며 생각하며 (1)
니체의 고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경북매일신문은 이달부터 매주 금요일 <책마을> 지면에 `살며 생각하며`코너를 신설합니다. 이 코너에서는 방민호 서울대 교수의 신변, 문단, 세상에 관한 에세이가 이철진 작가의 삽화와 함께 게재됩니다. 길한 해라는 황금 개띠해 무술년 한해의 바탕이 되는 행복한 삶의 여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정부가 바뀌고 해가 바뀌었다. 북에서는 현송월이라는 여자가 내려왔다. 사법적 처리가 계속되고 있다. 이 격류 속에서 나는 전혀 다른 바뀜을 꿈꾼다.

정치가 삶의 근본문제가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고야 말았다. 삶 자체의 문제가 돌아가야 한다. 니체에서 출발한 사람, 그가 마르크스에서 불교를 지나 니체로 다시 회귀하고자 한다.

두 개의 책이 지금 내 앞에 있다. 하나는`니체―그의 사상의 전기`(꿈결, 2017), 다른 하나는 니체의 고전적 저작`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책들을 앞에 놓고 나는 열심히 역사철학에서 삶의 철학으로, 정치의 삶에서 삶 자체의 삶으로 돌아오고자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눈에 띄는 대로 명문장들을 뽑아보자.

“나는 그대들에게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어떻게 하여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며, 사자는 마침내 아이가 되는가를.” 니체는 상징적, 비유적으로 쓰는 사람이었다. 이 문장 뜻의 해석은 여러분께 맡긴다.

니체는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무엇보다 중히 여겼다. 정신에 의해 억압된 인간성을 회복하고 싶어 했다. “창조하는 자기가 스스로 존경과 경멸, 쾌락과 고통을 창조했다. 창조하는 몸이 자신의 의지의 손으로 삼기 위해 정신을 창조했다.”

니체는 파괴자였다. 그는 민족이나 국가를 절대시하는 습벽도 경계했다. “모든 민족은 선과 악에 대해 말하는 혀를 가지고 있으나, 이웃 민족은 그 혀를 이해하지 못한다. 각각의 민족은 관습과 법 안에서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국가가 없어지는 곳. 그곳을 보라. 형제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지개가, 초인으로 이르는 다리가 보이지 않는가?”
 

이`경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절은 `자유로운 죽음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죽음은 아직도 축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가장 아름다운 축제를 벌이는 법을 아직도 배우지 못했다.…. 삶을 완성시키는 자는 희망을 가진 자와 맹세하는 자들에 둘러싸여 승리에 찬 죽음을 맞는다.”

그렇다. 우리는 죽어야 할 운명을 이고 사는 존재. 우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역사도, 정치도 아닌 `삶`을. 그리고 니체는 이런 말을 남겼다.

“베푸는 덕이야말로 최고의 덕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이철진 <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