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창구<br /><br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인도네시아 방문에서 `아세안(ASEAN)과 한국의 관계를 한반도 주변 4대국과 같은 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신남방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을 선언했다. 그동안 우리의 외교는 아세안이 한국의 정치경제 및 외교에서 차지하는 커다란 비중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관심과 노력이 부족하였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한 조치였다고 하겠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아세안과 동남아시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경제적으로 볼 때 아세안은 인구 6억4천만 명, GDP 2조8천억 달러의 거대한 시장으로서 중국 다음으로 제2의 무역파트너이며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여행지이다. 안보적 측면에서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나 아세안확대외상회의(ASEAN-PMC)는 한반도평화를 위한 협력안보(cooperative security)의 유용한 메커니즘이 되고 있다. 또한 외교적 차원에서는 아세안이 동아시아정상회의(EAS)와 아세안+3(APT) 등을 주도하면서 동아시아지역협력에 있어서 `아세안 중심성(centrality)`을 과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평화구축에 있어서도 한국과 중견국(middle power) 연대를 할 수 있는 중요한 파트너이다.

따라서 정부가 아세안외교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일단 정책방향을 바르게 설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남방정책이 대통령의 선언만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대 정부가 집권초기에 제시하였던 유사한 외교정책선언들이 대부분 실패하였던 이유는 `외교가 내정의 연장`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은 대중적 감성에 호소하는`포퓰리즘(populism)의 유혹`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치적 선전효과`에 급급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도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하며, 이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히 다음과 같은 점들에 대한 확고한 이해를 토대로 하여 실효성 있는 외교전략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동남아국가들의 국제협력방식, 즉 이른바 `아세안 방식(ASEAN way)`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전제로 하여 구체적 협력전략들이 수립, 추진되어야 한다. 아세안방식은 주권존중, 공동협의를 통한 합의제, 비공식적 접근, 조용한 외교(quiet diplomacy), 점진주의(incrementalism) 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서구적 협력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둘째, 집단적 차원의 아세안외교와 개별적 차원의 동남아 각국외교는 그 접근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아세안 회원국들은 정치체제와 경제수준의 격차 및 사회문화적 이질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아세안이라는 집단적 차원의 외교와 이질적 구성원들에 대한 개별적 차원의 외교는 결코 동일할 수 없으며, 회원국에 대한 외교는 국가별 맞춤형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셋째, 신남방정책의 구체적 추진을 위하여 대통령 직속으로 가칭 `아세안정책자문위원회`나 외교부 산하에 `신남방정책 태스크포스(TF)`를 설립하는 등 전문적으로 정책추진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대통령의 외교정책선언이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나지 않으려면 반드시 제도화에 토대를 둔 지속적인 연구가 뒷받침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아세안을 대북정책에 활용하려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세안은 회원국들 모두가 남북한 동시수교국으로서 치열한 외교경쟁의 무대가 되어 왔다. 특히 북한의 핵위협에 직면해 있는 한국으로서는 아세안을 이용하려는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국가도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자신과 협력하려는 국가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아세안외교에서도 `주객전도(主客顚倒)`는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