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창구<br /><br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파스칼은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야수도 아니다.…. 불행한 것은 천사의 흉내를 내려는 자가 야수의 흉내를 내곤 한다”고 했다. 이것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천사와 악마의 중간적 존재`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정치와 사회는 `나는 천사요 당신은 악마`라는 이분법적 사고와 흑백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민주주의체제의 강점인 다양한 사고의 스펙트럼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양자택일(兩者擇一)을 강요한다. 흑과 백 사이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회색들은 모두 `지조 없는 양다리 또는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한다. 그 결과 보수와 진보의 목소리는 크지만 중도(中道)는 설자리가 없다.

이분법적 사고는 복잡한 정치현상에 개입하는 수많은 변수들을 단지 둘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유치한 수준의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서는 다원성과 복합성이 특징인 민주정치를 제대로 분석하거나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들은 단순하고 명쾌한 설명을 좋아하기 때문에 흑백논리는 상당히 유혹적인 인식방법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정치인들은 상대방의 부당성을 비판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흑백논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분법은 정치현상을 극화(劇化)시킴으로써 그 본질이 왜곡될 수 있지만 대중을 선동하여 지지를 유도하는 데는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방을 부정하는 흑백논리는 비민주적 사고방식으로서 민주주의체제를 위협한다. 민주주의는 투쟁을 통해서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다소 많거나 적은 것(more or less)`을 추구한다. 흑백논리는 `천사와 악마의 투쟁논리`이지 `중간자인 인간세계의 타협논리`는 아니다. 흑백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북한체제에서는 김정은에 대한 비판이 불가능하며 복종이 아니면 죽음의 양자택일을 강요받는다. 또한 권력자에 대한 절대복종을 위하여 `인간을 신격화(神格化)`하는 것이 독제체제의 특징이다.

흑백논리가 만연하면 국론분열이 심화되어 국가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견해를 인정하지만 그것이 일정한 수준을 넘어 극심한 대결로 치닫게 되면 공동체의 유지가 어려워진다. 국민들의 극심한 갈등과 분열로 모래알처럼 산산조각이 난 국가는 외부침략에 취약하여 파멸을 자초하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따라서 우리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 흑백논리를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나는 절대자인 신이 아니라 상대적 존재인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보수 또는 진보라는 이념도 역시 상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이며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국가발전의 수단으로서 기능해야 할 `정치이념이 극단화되면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우상화 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는 지향하는 가치가 서로 다를 뿐이고 어느 하나가 틀린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서로의 단점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배우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모든 잘못의 원인을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으로 돌리면 그 치유가 불가능해진다.

진보는 `보수의 경륜과 안정성`을 배울 것이요, 보수는 `진보의 혁신과 진취성`을 배울 일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이다. 여당은 야당의 입장에 서서 생각할 수 있을 때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다. 보수주의자는 진보적 견해를 듣고, 진보주의자는 보수적 견해를 경청할 때 비로소 편향된 외눈박이 사고를 극복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 능력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인 동시에 민주주의자가 지녀야 할 가치관이요 국민통합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