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일까

2018년 올해는 무술년(戊戌年)이다. 노란색을 의미하는 십간의 무(戊)와 십이간지 중 개를 뜻하는 술(戌)로 황금 개의 해를 뜻한다. 노란색은 풍년(豊年)과 다산(多産)을 상징하며 개는 충성과 의리의 상징이자 사람들의 재물을 지켜준다. 우리 조상들은 12지(支) 동물 중 개에게 특히 감정을 이입했다. 단순히 액(厄)을 막는 벽사의 차원을 넘어 인간과 늘 함께하는 반려자로 여겼다. 역사와 민속 속에 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국립민속박물관 천진기 관장의 도움말로 의미와 상징을 알아본다.

삼국사기·고구려 탄생설화 등에 기록
2천 년 전부터 보편적으로 기른 듯
흰개가 전염병·잡귀 물리치고
집안에 행복 가져온다 믿어
누렁이는 풍년과 다산의 상징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 받아

개는 야생 동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가축화 해 길러졌다. 언제부터 길들여져 집개로 살게 됐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여러 가지 문헌이나 회화, 조형 미술 등을 통해서 볼 때 대략 1만2천~2만년 전의 구석기 시대부터라고 추측된다. 최초의 발상지는 고대 동양과 이집트라고 본다. 고대 사회인들은 밤에 우는 동물들에게 불가사의한 영감이 있어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악령의 접근을 탐지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 왔다. 고대 페르시아교의 입법 중에는 `개와 닭은 밤의 악마의 적으로서 영안을 가지고 악마와 싸워 그 힘을 없앤다. 그렇지 않으면 악마는 인간과 가축을 괴롭힌다. 그러므로 개와 닭에 의해 모든 선의 적은 극복 당하고 세계는 개의 지능에 따라 성립되고 있다`라고 했던 것으로 봐서 유달리 개는 고대 페르시아에 있어서도 최고의 존경을 받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들도 역시 개를 존경했으며, 또한 밤을 타서 스며드는 악정(惡情)을 짖어서 쫓는다는 신앙에서 규방의 방지기로 개가 선택됐던 것이다.

인간이 개와 함께 한 역사는 수 천 년 전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에서는 하, 상, 주 시대 이미 잡귀를 쫓기 위해 관 아래에 개를 묻는 풍습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 대표적 유적인 부산 동삼동 패총유적에서 개의 머리뼈가 발견됐다.

동양에서 개에 관한 기록이 처음 보이는 곳은 `서경`이다. 3천년 전에 쓰인 `서경`의 여오(旅獒)편에는 “주나라 문왕이 상나라를 쳐부수니 여(旅) 땅의 오랑캐들이 개(獒)를 공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때의 개는 삽살개나 풍산개처럼 여(旅) 땅의 특산으로 몸집이 큰 개다. 주인을 구한 충심있는 개의 이야기로 유명한 전북 오수(獒樹)면의 지명에 `큰개 오`자를 쓴 것은 당시 개가 보통 개가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중국 역사서 `후한서`나 `삼국지`의 동이전에는 부여의 관직으로 `마가` `우가` 등과 함께 `구가(狗加)`가 보인다. 또 `삼국사기` 고구려조에도 `유화부인이 낳은 알을 개에게 주었는데 먹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모두 2천년 전 한반도에 이미 개의 사육이 일반화됐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문헌뿐 아니라 고분 출토품, 고분 벽화, 십이지신상, 신라 토우 등에도 개는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개는 주인과 타인을 구별하는 판단력이 있을 뿐 아니라 주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충성스러운 동물이다. 그러나 항상 사람 주변에 맴돌다 보니 구박이나 천대를 받기도 한다. 민요, 속담, 수수께끼 등에 보이는 개는 비천함의 대명사로 그려진다. 개살구, 개맨드라미 등 이름 앞에 `개`가 붙으면 비천하고 격이 낮은 사물로 떨어진다.

개가 어느 동물보다도 인간의 사랑을 받아온 것은 재앙을 물리치고 집안의 행복을 지키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예부터 개는 집지키기 뿐 아니라 사냥, 시각장애인 안내, 수호신 역할을 해왔다. 특히 흰개는 전염병·잡귀를 물리칠 뿐 아니라 집안에 좋을 일을 가져온다 해서 사랑을 받았으며, 누렁이는 풍년과 다산의 상징으로 농가에서 많이 길렀다.

개 그림 가운데에서 조선시대 이암의 `화조구자도`와 `모견도(母犬圖)`, 김두량의 `흑구도(黑狗圖)`처럼 개가 나무 아래에 있는 장면은 도둑을 막아 집을 잘 지킴을 상징한다.

개는 `戌`(개 술)이고, 나무는 `樹`(나무 수)이다. `戌`은 `戍`(지킬 수)와 글자 모양이 비슷하고, `戍`는 `守`(지킬 수)와 음이 같을 뿐만 아니라 `樹`와도 음이 같기 때문에 동일시됐다. 즉 `술수수수(戌戍樹守)`로 도둑맞지 않게 잘 지킨다는 뜻이 된다. 고구려 각저총과 무용총, 안악 3호분 부엌그림에 보이는 개도 무덤을 잘 지키라는 의미에서 그려 놓은 것이다.

개고기가 보양식으로 널리 사용돼 온 것은 음양설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하루 가운데 술시(오후 7~9시)에 양기가 가장 높은 것처럼 개에게도 양기가 셀 것이라고 본 것이다. 전통 향음주례에서 개고기가 가장 귀한 음식으로 사용되고 삼복 때 개고기를 즐겨 먹은 것은 원기를 보충하는데 개만한 음식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는 “개고기가 위장을 튼튼히 하며 양기를 북돋운다”고 씌어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여름에 개고기를 삶아서 먹는 것을 `가장(家獐)`으로 불렀다”는 내용이 전한 것을 보면 개고기를 먹는 일은 꽤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 보면 백제의 멸망에 앞서 사비성의 개들이 왕궁을 향해 슬피 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집에서 기르던 개가 슬피 울면 집안에 초상이 난다 해 개를 팔아 버리는 습속이 있다. 또 개가 이유 없이 땅을 파면 무덤을 파는 암시라 해 개를 없애고, 집안이 무사하기를 천지신명에게 빌고 근신하면서 불행에 대비한다. 무속 신화, 저승 설화에서는 죽었다가 다시 환생해 저승에서 이승으로 오는 길을 안내해 주는 동물이 하얀 강아지다. 개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매개의 기능을 수행하는 동물로 인식됐다.

우리나라에서도 개에 관련된 전설이나 설화가 많이 존재한다. 일례로 임실군 오수면의 의견은 삼국유사에까지 기록될 정도로 유명하다. 김개인이라는 사람이 기르던 개는 그가 들판에서 잠든 사이 주위에 불이 나자 자신의 몸에 물을 묻혀 불을 끄고 자신은 희생됐던 이야기로 옛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릴 정도였다. 오수지역에 가면 이를 기리는 의견비와 의견공원이 있어 우리 조상들도 예부터 개와 관계가 돈독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삽살개와 진돗개도 사람들의 보살핌으로 우리의 조상들과 삶을 같이해온 자랑스러운 토종견으로 자리하고 있다.

 

2018년은 개띠 해이다. 그래서 천하무적 삽사리를 그려 보았다. 삽살개는 삽사리라고도 하고 귀신이나 액운을 쫓는 뜻을 지닌 `삽(쫓는다, 들어내다)`·`살(귀신, 액운)`개라는 의미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긴 털이 얼굴을 덮어 유머러스하기도 하며 설화와 전통회화나 민화 등 그림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신라 때에는 주로 궁궐 중심의 상류층에서 길러졌고 점차 일반 민가로 번져 고을에서도 흔히 볼 수가 있었다. 오랜 세월 우리민족과 더불어 애환을 같이 해온 개이다.

그림= 권정찬 화가경북도립대학 교수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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