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창구<br /><br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프랑스어로서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는 의미이다. 부(富)나 권력 또는 명성을 가진 사람은 사회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진 자가 솔선수범할 때 사회통합은 가능해지며, 이것은 결과적으로 국력을 증강시키는 애국의 길이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1945년 당시 19세의 공주 신분으로서 여군장교로 입대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앤드루 왕자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했다. 영국 최고의 명문이자 귀족의 자존심이라고 불리는 이튼 칼리지(Eton college)의 본관 벽면에는 1·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이 학교 출신 2천여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튼인(Etonian)들이 전통적으로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것은 `약자를 위해, 시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라는 슬로건이다. 바로 이것이 영국의 힘이요, 왕실이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이유이다.

미국도 역시 가진 자가 솔선수범하는 명예로운 전통이 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 정치인과 군 장성의 자녀들은 142명이나 되었으며, 이 가운데 35명은 전사했다.

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의 주식 99%를 기부하기로 약속했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와 투자의 천재 워렌 버핏은 전 재산의 절반이상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부서약(giving pledge)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또한 2016년 뉴욕의 상위 1% 부자들은 세금을 더 내게 해달라는 청원서를 의회에 제출하였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물론 우리나라에도 전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에 헌신한 석주 이상룡과 우당 이회영, 300년을 이어온 경주 최부자의 미담이나 유한양행의 설립자 유일한 박사 등 이른바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또한 최근에는 기부문화가 확산되면서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아직도 가진 자의 책임의식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도처에서 `갑질`이 난무하고 있다. 대기업 회장의 쇠파이프 보복폭행사건, 항공사 부사장의 땅콩회항사건, 육군대장 부부의 공관병 갑질, 그리고 심지어 사회정의를 선도해야 할 일부 판검사·언론인·대학교수들까지도 다양한 형태의 갑질과 범법행위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모두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대척점에 있는 사례들로서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사회의 지도자들도 가진 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도덕적 재무장이 필요하다. 영국의 이튼에서는 매년 `이튼 액션(Eton action)`이라는 행사를 통하여 사회에 대한 헌신과 봉사를 실천하는 교육을 한다.

어느 해 교장은 졸업사를 통해 “우리학교는 자기가 출세하거나 자기만 잘되기 원하는 사람은 원치 않습니다. 사회나 나라가 어려울 때 제일 먼저 달려가 선두에 설줄 알고 주변을 위하는 사람을 원합니다”라고 했다. 이처럼 선진국의 상류사회에서는 미래세대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잘사는 것보다도 바르게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는가. 자녀의 출세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출세한 후에 지녀야 할 사회적 책임과 의무도 함께 가르치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자녀교육이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부모가 먼저 솔선수범하고 있는가. 미래 세대에 대한 올바른 교육은 현 세대의 책임이다.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이 더욱 춥고 힘들어하는 연말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여유가 있다면 그들의 아픔을 모르는 척하지 말자. 이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애국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