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크리스마스 이브에 비가 내렸다. 불탄 9층 건물의 검은 그을음을 씻어주지도 못하면서. 세상은 몹시 추웠다. 많은 사람의 환호와 동경 속에 오히려 고독했던 한 영혼을 안아주지도 못하면서.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울고, 어떤 삶은 불현듯 멈추고, 어떤 삶은 기어이 계속 되고, 여기는 춥고, 저기는 따뜻하고, 행복은 더 행복하고, 불행은 더 불행했다.

촛불이 환했다. 태극기들이 나부꼈다.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새 대통령을 뽑았다. 세월호가 올라왔다. 사람들이 뼈가 되어 돌아왔다.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 미국 대통령이 다녀갔다. 집 여러 채 가진 사람들이 투덜거렸다. 원자력발전소를 짓지 말기로 했다가 다시 짓기로 했다. 서울에서 양양까지 새 길이 났다. 사람들이 고속철을 타고 강릉에 갔다. 사람이 사람을 홧김에 죽이고 술김에 죽이고 재미로 죽였다. 혐오가 물처럼 공기처럼 흘러 다녔다. 방송국이 쉬다가 다시 방송을 시작했다. 불이 났다. 배와 배가 부딪쳤다. 사람들이 자꾸 죽었다. 포항에 지진이 났다. 수능이 일주일 미뤄졌다. 북한 병사가 총 맞은 채 귀순했다. 수술한 의사가 분노했다.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가 까발려졌다. 천만 영화가 한 편 나왔다. 늙은 영화감독과 젊은 여배우가 통념에 반하는 연애를 계속 했다. 연예인들이 민박집을 하고 식당을 열었다. 82년생 김지영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언어에도 온도가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됐다. 노벨문학상은 이웃나라 태생의 영국 작가가 받았다. 축구대표팀이 욕을 많이 먹었다. 미국서 별 볼일 없던 야구 선수들이 돌아와 떼돈을 받았다. 여자 골프 선수들은 대단했다.

지나고 나니 그저 담담하게 적는 한 줄 문장일 뿐이다. 정리나 결산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기억하고 싶어서, 기억하기 위해서, 왜 기억해야 하느냐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지난날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 완전히 소멸되는 걸 조금이나마 늦추려고, 그때의 아픔이 나중엔 전혀 안 느껴질까 봐, 그때의 기쁨이 훗날 모르는 일이 될까 봐, 계속 아프기 위해 기억을 꼬집고, 계속 웃기 위해 좋았던 일들을 헤아린다.

1월엔 할머니의 대퇴골이 부러졌다. 눈멀고 잘 못 듣는 할머니가 걷지도 못하게 됐다. 2월엔 넙치농어 낚시에 실패했다. 심장 부정맥 수술을 받았다. 3월엔 탄핵에 환호했다. 4월엔 큰 쏘가리를 잡았다. 오래 동경한 스타와 만났다. 5월엔 대선 사전투표를 하고 바이칼 호수에 다녀왔다. 6월엔 그게 마지막일 줄 모르면서 마지막 여행을 함께 다녀왔다. 7월엔 세상 하나가 끝났다. 영원히 마음 불구가 되었다. 8월엔 절뚝거리고 비틀거리면서 살아지니까 살았다. 서해의 한 갯바위에서만 마음 편했다. 9월엔 아버지가 위암수술을 받았다. 경과가 좋았다. 엄마의 뇌경색은 경미한 것이었다. 다행이었다. 10월엔 첫 시집이 나왔다. 11월엔 시집 출간을 여러 사람과 자축했다. 12월엔 일본 북해도에 다녀왔다. 2년간 써온 경북매일신문 칼럼은 잠시 쉬기로 결정했다. 세상에 할 말이 생기면 재개할 것이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보이다가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정현종,`견딜 수 없네`)라는 시구에 가슴 저렸으나 이제는 견디려 한다. 어쩔 수 없다고, 체념과 포기도 배우고, 비우고 버릴 줄 알 때가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계획하거나 약속하지 않으려 한다. 내 뜻대로 되는 일 하나도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행운과 믿을 수 없는 불운이 길항하는 내 삶은 흑자와 적자를 오가다 0원이 찍힌 통장처럼, 결국은 `나`만 남고, 끝내 `오늘`에 멈춘다. 어떤 삶을 살아도 나는 나고, 지나온 시간과 살아갈 시간 모두 오늘이다.`열심히 살겠다`는 말만큼 정직한 고백은 없다. 나는 오늘을 열심히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