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여말선초의 문신인 이첨(1345~1405)은 우왕 1년(1375) 조정의 전권을 쥐고 전횡을 일삼던 권세가 이인임을 탄핵하다 겨우 목숨을 건져 변방 해안가에서 10년이나 귀양살이를 했다. 유배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구설에 오를까 염려한 그는 자신의 집을 `눌헌(訥軒)`이라 이름 짓고 신중함을 강조하는 `명`을 지은 것으로 보아 젊은 혈기에 권력자에 맞섰던 자신의 경솔한 언행을 후회하고 자숙했던 것 같다.

동문선(東文選)에 전해지는 눌헌명의 구절은 `말을 삼가기를 옥을 손에 쥐듯, 가득찬 물그릇을 들듯이 조심하라`는 내용이다. 즉 혼란한 세상에서도 해야 할 말은 하되 좀 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자 역시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행동은 준엄하게 하되 말은 낮춰서 해야 한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질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온다`는 격언도 있듯 사람의 처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다. 그리고 말해야 할 것과 침묵해야 할 것을 알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가 구설과 곤경에 처해 화를 입은 역대의 사례는 굳이 더 이상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개인의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국가의 녹을 먹는 벼슬아치나 공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고 `학이 날 적에는 날개가 검고 서 있으면 꼬리가 검다`고 대답하는 형식은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고 하는 주장은 보신(保身)의 대책으로서는 흠잡을 데 없지만, 올바른 공직자의 처신으로서는 부족한 것이다.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벙어리일 뿐이며 양편이 모두 옳다는 것은 아첨에 가깝기 때문이다.

윤기(1741~1826) 역시 그의 `무명자집, 자식들을 깨우치고 스스로도 반성하며`라는 서문에서 `사람에게 있어 말은 물이나 불과 같다. 사람은 물과 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수재나 화재를 당하면 참혹하기 그지없으니 조심하여 사용해야 폐해가 없다. 입은 화를 부르고, 행동은 흔단을 여니, 명심하고 명심해, 경계하고 조심하라`고 말조심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지난 11월 15일 규모 5.4의 강진이 포항에서 발생했다. 이 천재지변으로 1천여 명이 넘는 흥해 지역 주민들이 졸지에 집을 잃고 오갈 데 없는 이재민으로 전락해 대피소에서 여진의 공포와 초겨울 추위에 떨고 있다. 이 초유의 재해를 두고 제1야당 최고위원이라는 여성 정치인이 `현 정부에 하늘이 주는 경고이자 천심`이라고 막말을 넘어 독설을 쏟아냈다. 야당의 입장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 소재로 활용하려는 정략적 발언인지는 모르겠으나, 지진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맞은 상황에서 함부로 내뱉은 독설은 지진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이재민들과 포항시민들의 가슴을 두 번 찌르는 비수가 되었다.

정치인의 말은 신중해야 한다. 불필요한 오해를 빚을 가능성이 있는 말은 삼가야 하며 본인이 스스로 내뱉은 말에는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긴 세월 영호남이라는, 동서로 갈린 기형적인 한국의 정치지형은 각 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100% 당선되는 불합리한 결과를 낳았다. 이는 곧 수준미달과 후안무치의 정치인을 배출하게 되어 온갖 비리와 부패의 중심에서 정치판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있으며 정치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직이 하늘을 팔아서 자기 이익을 챙기는 직업인 무속인 출신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치에 몸담고 있는 공인으로서 이런 비과학적이며 비논리적인 독설을 스스럼없이 내뱉고, 자기 자신의 부끄러움을 돌아볼 줄 모르는 정치인은 이제 국민들이 심판하여 퇴출시켜야 할 때이다. 유권자들이 위정의 탈을 쓴 이런 부류의 정치인들이 설쳐대며 내뱉는 기가 막힌 막말과 독설을 들으며 가슴을 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