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지난 15일 오후 2시 29분에 규모 5.4의 지진이 포항시를 엄습했다. 작년 9월 12일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 지진에 이은 천재(天災)다. 그날 경북대 대학원동에 있던 나는 건물의 강력한 동요에 화들짝 놀라 밖으로 튀어나갔다. 학과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대학원생들을 데리고 운동장 부근에서 담소(談笑)한 기억이 생생하다. 너무나 오랜 세월 지진과 무관하게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작년과 올해의 지진은 매우 낯설고 두려운 존재로 다가온다.

포항 지진 이후 죽도시장에 손님들 발길이 뜸하다는 보도에 한숨이 났다. 경북대 수련원이 자리한 구룡포에 갈 때마다 죽도시장에 들러 푸짐한 횟감을 마련했던 일이 새삼스러운 탓이다. 어디 그뿐인가. 영덕과 울진 사이에 있는 칠보산 자연 휴양림에 갈 때에도 죽도시장에 들르곤 했다. 이제는 쳐다보지도 않지만, 고래 고기를 처음 맛본 곳도 죽도시장이었다. 사람처럼 지능지수가 높고 아이 키우듯 새끼를 기르는 고래를 먹는다는 것이 찜찜했던 탓이다.

나한테 포항은 바다를 처음 보았던 곳이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경주로 수학여행 가기 전에 해병대 1일 입소를 위해 들렀던 곳이 포항이다. 어느 해변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너르고 맑은 모래사장과 바닷바람, 그리고 짠맛의 바닷물은 지금도 새록새록 기억난다. 민물과 확연히 다른 냄새가 났지만, 얼마나 짠지 확인하고 싶었기에 두 손에 바닷물을 움켜쥐고 맛을 보았던 것이다. 정말로 짠맛이 느껴지는 순간, 그것은 경탄(驚歎)으로 다가왔다.

해병대 1일 입소를 마친 우리는 포항제철을 견학했다. 버스 한 대마다 선배들이 올라타서 포철의 역사와 신화를 자랑스레 선전했다. 대학 졸업하고 오면 100만원 상당의 캐비닛 크기 쇳덩어리를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그들. 그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세월이 물 흐르듯 지나고, 포항은 경북대와 함께 다시 나를 찾아왔다. 경북대 구룡포 수련원과 뗄 수 없는 포항. 그리고 노문학과 엠티로 찾은 내연산과 보경사, 칠포 바다는 언제나 아름다웠다.

언젠가 구룡포 수련원으로 부모님과 형제들을 초대한 적이 있었다. 2박 3일 일정의 여름휴가 동안 그이들을 유쾌하게 인도한 것은 강구의 홍게였다. 대게는 철이 아니어서 구할 수 없었지만, 홍게는 냉동고에 넣어 두고 한여름에도 판매하고 있었다. 게를 좋아하던 어머니는 “야야, 이렇게 맛있는 게는 처음이구나. 꽃게만 먹어보았으니 말이다.” 살이 꽉 들어찬 홍게를 그리 좋아하시던 어머니. 그 후로 강구 갈 일 있으면 대게와 홍게를 보내드리곤 한다.

작년 초에는 장성한 아이들을 데리고 구룡포 근대골목을 찾았다. 일제강점기 구룡포에 거주한 일본인들의 집과 생활상을 돌아보는 일은 흥미로웠다. 생선회와 대게를 안주거리 삼아 아들들과 지난날과 다가올 날을 추억하고 기획하는 일은 뿌듯한 추억으로 남았다. 그렇게 포항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여러 가지 기억으로 남은 곳이다. 나아가 앞으로도 인연을 맺을 곳이기도 하다. 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포항의 도시 인문학 사업도 그 하나다.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와 호미곶 일출로 널리 알려진 포항이 자연재해로 신음하고 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알게 된 분 가운데 지진으로 집이 파손되어 지인(知人)의 집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있다. 뭐라고 위로할 말을 찾기도 어렵다. 포항을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한시바삐 전폭적인 지원을 해드려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지진 같은 자연재해에 태무심하고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은 우리의 안전 불감증도 돌이켜볼 일이다.

경북매일에 매주 금요일 `파안재에서`라는 칼럼을 연재하는 필자에게 포항지진은 남의 일이 결코 아니다. 포항시민 모두 용기를 내서 재난을 서둘러 극복하여 건강하고 행복한 일상으로 복귀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