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하거나 망한다는 말이 있다. 권력을 잡게 되면 권력에 도취되어 남의 충고나 비판은 멀리하고 꺼리게 되며 그 자리에는 아첨하여 자기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로 채운다. 그래서 권력은 부패하게 되고 마침내 망하게 되는 것이다. 즉 견제 받지 못하는 권력은 스스로 무너진다는 것이다.

고려와 더불어 조선이 중국에도 실질적으로 없던 500여 년의 왕조를 이어올 수 있었던 토대는 대간제도를 건전하게 적극적으로 활용한 데 있다.

조선시대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장치로 설치한 대간제도는 왕권과 신권을 동시에 견제했다. 대간이란 백관들의 감찰임무를 맡은 사헌부의 대간과 국왕에 대한 간쟁의 임무를 맡은 사간원의 간관을 합친 말이다. 이 대간이 절대 권력을 견제할 수 있었던 배경은 활발한 언론활동에 있었다. 여론정치를 위해서는 오늘날처럼 매스컴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인지라 정치와 풍속 전반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직책이 별도로 필요했으며 이 직책을 맡은 관리가 대간이었다.

김부식(1075~1151)의 `삼국사기` `설총전`에 화왕계가 실려 전한다. 설총의 유일한 유문(遺文)으로서 이 화왕계는 신문왕이 5월 한여름에 높고 훤한 방에서 설총을 돌아보고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색다른 이야기를 원하자 설총이 들려준 우화이다. 꽃 중의 왕인 목단이 미인이며 아첨을 잘하는 장미와 충간하기 위해 삼베옷에 가죽 띠를 두른 차림으로 찾아온 백두옹인 할미꽃 두 사람을 두고 선택을 망설이는 것을 보고 백두옹이 화왕에게 간언을 했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를 들어 설총이 신문왕을 깨우쳤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에 쓰인 가전체소설인 화사(花史)나 화왕전은 이들을 번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을 간략히 보면, 꽃 중의 왕인 모란에게 모든 꽃의 정령이 다투어 달려와 화왕을 배알할 때, 한 아름다운 여자 정령이 붉은 얼굴과 옥같이 깨끗한 이로 곱게 단장하고 모란의 환심을 사려할 때, 다른 남자 정령이 베옷에 가죽 띠를 띠고 백발에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며 다가와서 말했다. `제 이름은 할미꽃(白頭翁)입니다. 저는 서울 밖 큰길가에 자리 잡고서 아래로는 탁 트인 들판과 위로는 높이 솟은 산에 의지해서 사옵니다. (중략) 모든 군자는 결핍을 대비하지 않음이 없으니 대왕께서도 혹 이런 생각을 하십니까!`라고 묻자 누군가가 `대왕께서는 두 사람 중 누구를 곁에 두시렵니까?` 라고 물으니 꽃의 왕이 `노인장의 말도 이치에 닿는 말이며 미인도 얻기가 어려우니 장차 어찌해야 좋을까?`하며 망설였다.

이때 노인이 `저는 대왕이 총명해 의리를 아실 것이라 생각해 왔으나 이제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체로 임금 된 사람 치고 간사하고 아첨하는 사람을 가까이하고 정직한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 이가 드뭅니다. 그러므로 맹자는 불우한 신세로 일생을 마쳤으며, 풍당은 머리가 허옇게 되도록 낮은 벼슬자리에 머물렀사옵니다. 예부터 사정이 이런데 전들 어쩌겠습니까?`이 말을 들은 화왕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고 한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신문왕은 서글픈 기색으로 `그대의 우화는 참으로 뜻이 깊구려. 이 이야기를 기록하여 임금이 된 자의 경계로 삼게 하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우화에서 장미는 아첨하는 간신배이며, 할미꽃은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신하를 상징한다. 인간의 위선과 약점을 꼬집고 짤막하면서도 촌철살인의 지혜를 주는 우화는 별로 없다. 그래서 역사기록이나 문헌에 나오는 우화는 한두 편이라도 우리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긴다. 오늘날의 정치권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이 우화가 주는 교훈의 학습효과가 크다고 보겠다. 권력을 갖게 되면 누구나 권력을 휘두르는 맛에 유혹을 당하기 쉽다. 권위의 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독존의 늪에 빠져 제왕적 통치방식으로는 국민 마음을 얻지 못한다. 국민의 눈높이를 모르고 불통하는 지도자는 그 누구도 국민으로부터 배제 당한다는 진실을 반면교사로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