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희선<br /><br />숙명여대 교수·기초교양대학·정치학 박사
▲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기초교양대학·정치학 박사

국무회의에서 지난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여 열흘 가까운 황금연휴를 보냈다. 인천공항은 개항 이래 최고 인파가 모여들어 110만 명 이상 해외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반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쉬지도 못한 채 일터에서 분주하였다. 달력의 휴일과 무관하게 그림자 노동, 감정노동까지 감당하는 휴식의 양극화를 보여주었다. 정신없이 일하고, 바쁘게 노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제 우리도 일과 휴식에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은 OECD 회원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다. 24시간 가동되는 사회에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노동은 진행된다. `과로사`를 언급할 만큼 많은 직장인들이 장시간 회사에 얽매여 있고 노동 강도 또한 높다. 무엇보다 빡빡한 스케줄로 쉼표의 시간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유엔이 `세계 행복의 날(International Day of Happiness)`을 정하고 실시한 갤럽조사는 여러 생각 거리를 던져준다. 143개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어제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고 느꼈는가?”, “하루 종일 존중심으로 대우 받았는가?”, “많이 미소 짓거나 웃었는가?”, “흥미로운 것을 배우거나 했는가?”, “많은 시간 즐거움과 기쁨을 경험했는가?”라는 질문에 남미 국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파라과이가 100점 만점에 89점으로 1위였고, 한국은 59점이었다. 우리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나라는 22개국뿐이었다.

이러한 낙제점은 바쁘게 살며 휴식과는 거리가 먼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일상을 축제처럼 보내는 남미와는 달리, 굳은 표정으로 옆도 돌아보지 않은 채 전방질주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비춰준다. 자신의 삶을 어떻게 형성해 갈 것인가 주체적인 탐색의 시간도 없이, 타자를 환대할 여유도 없이, 자본과 시장에 소모되는 존재는 취약하다.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말한 것처럼, 스스로 자신의 성과를 증명하고 극대화 하려 애쓰는 가운데 만성피로가 축적되고 우울증과 번아웃 증후군이 늘어난다. 심신이 충분히 쉬지 못한 상황에서 행복에 대한 질문은 곤혹스런 일이다.

우리 사회는 `바쁘다`는 말을 `중요하다`로 해석한다.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중요 인사들은 `너무 바쁘다`며 잠깐 얼굴만 비추고 다른 자리로 사라진다. 성공 신화의 주인공들은 “놀지 않고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 덕분에 오늘의 이 자리에 올랐다”고 증언한다. 한국 사회에서 `바쁨`은 언제나 성실함의 표상이었고, 한국인은 늘 `빨리빨리` 서두르며 살아왔다. 몸은 설사 쉬더라도 머릿 속은 해야 될 일들로 끝이 없다. `소가 된 게으름뱅이`라는 전래동화도 `사람이 게을러지면 고생한다`는 교훈을 통해, 게으름은 죄악이고 근면을 개인과 사회의 미덕으로 칭송해 왔다.

그러나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근로는 노예의 도덕”이라고 말한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소수 특권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여가를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며, 노동시간을 4시간으로 줄이고 여가를 즐기라고 주장한다. 일을 강요받지 않아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키울 수 있고 삶이 행복과 환희로 충만해 진다는 것이다. 진정 행복해지려면 게으름이 필요하다고 러셀은 역설하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든 지금, 한국 사회에 `게으름`의 철학이 요청된다. 쉼이 없는 노동은 생각이 자랄 시간을 저해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 아무 일이 없는 빈 시간이 있어야 한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해 왔고, 앞으로 인공지능 로봇이 힘들고 지루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다고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시대, 쉬며 놀며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는 빈둥거리는 시간이 요청된다. 24시간 긴장하며 돌아가는 시스템에 브레이크를 걸고, 이제 우리 사회도 게으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