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찬<br /><br />김천대 교수
▲ 김동찬 김천대 교수

화려한 행사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레드카펫(Red Carpet)이 떠오른다. 레드카펫 위를 걸어 내려오는 사람들의 호화로운 모습은 일반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만큼 귀빈을 접대하는 데 있어 레드카펫은 언제나 빠지지 않는 가장 대표적인 상징이 됐다. 중세시대에는 옷감을 염색하는 염료의 가격이 무척이나 고가였기 때문에 서민들은 감히 염색을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천연 염료는 대량으로 생산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매우 높았고, 오직 왕이나 귀족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소수만의 한정된 `특권`이었던 것이다. 빨간색 천은 그 중에서도 가장 비싼 천이었다. 모직 10kg을 붉게 염색하기 위해서는 `케르메스(연지벌레)`라는 곤충이 14만 마리나 필요했기 때문에 귀족이나 왕족만이 바로 이 `빨간색`을 누릴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빨간색은 권위를 상징하게 됐고, 전통적으로 귀족을 대표하는 색으로 유럽의 왕실에 언제나 레드카펫이 깔려 있게 됐다. 빨간색이 곧 권위라는 이미지로부터 레드카펫은 귀한 손님을 위한 `최고의 환대`라는 뜻이 담기게 된 것이다. 영어로 융숭하게 대접한다는 뜻을 `Red Carpet Treatment`라고 한다. 귀한 손님을 맞이한다는 극진한 환영의 뜻으로 중요한 행사에는 꼭 레드카펫을 깔게 돼 있다.

레드카펫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시인인 아이스킬로스(Aeschylos)가 쓴 걸작 `오레스테이아(Oresteia)` 중 `아가멤논(Agamemnon)` 편에서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에서 돌아올 때 빨간 길을 걸은 것에서 유래한다. 이후 유럽 왕실에서 귀빈을 환영할 때 레드 카펫을 까는 것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중세 유럽에서 붉은색은 `부자, 귀족의 색`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황실에서 많이 사용한 색 역시 붉은색이었다. 레드카펫이 왕실 공식 석상에서 처음 쓰인 것은 나폴레옹 1세의 황제 즉위식 때였다. 최고급 대우와 권력의 의미로 레드카펫을 깔아줬고, 이후 왕실에서 레드카펫을 까는 전통이 생겼으며 훗날 공식 행사에까지 사용됐다. 이후엔 공항, 고급 식당, 시상식 등에서도 고급으로 대접한다는 의미로 레드카펫을 깔게 됐다.

레드카펫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영화제이다. 영화제에서 여배우들이 어떤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영화제 수상 소식 못지않게 대중들의 흥미를 유발시킨다.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한 여배우들의 모습은 실시간으로 신문, 방송사로 전송돼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그 중에서도 영화제 시상식 레드카펫에서 여배우들이 선보이는 의상은 그 해 패션계의 가장 큰 화두가 된다. 레드카펫 위를 걸어가다가 삐끗하거나 넘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면 굴욕 샷이 찍히고 한동안 대중의 유머거리가 된다. 포토존도 근처에 있다보니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여성 스타들의 노출 사고가 제일 빈번하게 터지는 곳이라는 농담도 있다.

2016년 9월 3일 주요 G20개국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중국 항저우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평소 이용하던 기체 앞쪽 문을 통해 내려야했지만 공항엔 밟고 내려갈 트랩이 중국 정부로부터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오바마 대통령은 뒤편으로 이동해 다른 문을 통해 내려야 했다. 이 통로는 아프가니스탄 등 위험 지역에서만 보안을 위해 사용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출입구였다. 앞서 도착한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박근혜 대통령 등은 통상적인 의전에 따라 레드카펫이 깔린 트랩을 밟고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유독 오바마 대통령만 트랩이 제공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가디언지 등 서방 언론들은 중국 시진핑의 이런 악의적인 행위에 대해 미리 계산된 외교적 모욕이라며 일제히 비판했다. 부디 우리나라 문재인 대통령은 어느 나라를 방문 하든지 오바마와 같은 외교적 굴욕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