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뢴트겐행 열차`황수아 지음·문학수첩 펴냄시집·8천원

시인 황수아(37)에게선 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파리를 휘청대며 걷던 초현실주의자의 향기가 난다. 그래서다. 황 시인의 첫 시집 `뢴트겐행 열차`의 저자 서문을 살짝 고쳐봤다.

“마음의 발자국을 복원하며 생각했다. 삶은 우연이면서 선택이었고, 너무 쉬운 문제에 대한 오답과도 같았다.”

좋은 시인은 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느낀`다. 황수아의 경우도 적지 않은 사회적·문화적 고민 속을 통과했던 청춘이 있었을 터. 그 때문일까. 1920년대 초현실주의자들이 그랬듯 황 시인 역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세계인식을 거부한다. 이런 노래를 통해서다.

`성격이 급한 매미는 곧 집을 벗어 놓고 떠나갔다/나는 외로웠지만/행인들은 그것을 자연의 섭리라고 표현했다/매미는 울음소리로 소식을 전해왔다…`

- 위의 책 중 `책갈피` 일부.

보통의 사람들은 매미에게서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자연의 섭리`만을 읽어낼 뿐이지만, 시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울음소리로 소식을 전`하는 매미의 짧은 생을 자신의 삶과 동일화시킨다. 깊은 성찰에서 나온 좋은 은유다.

이어지는 시 `우리는 실존주의 강의를 들었지`에서는 황수아의 시적 자각과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일 년 중 가장 따스했던 날/우리는 실존주의 강의를 들었지/교정에 목련은 만발했고/학습의 목표는 실존이었어/우리의 우상은 한결같이 카뮈였지만/우리에게 실존은/등록금 고지서에 인쇄된 우주의 크기였지…`

한 편의 잘 쓰인 소설처럼 기승전결을 갖춘 도입부다. 존재와 실존의 문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철학자와 청년들의 화두 혹은, 고민덩어리였다.

그걸 알베르 카뮈나 장 폴 사르트르처럼 우회의 방식으로 어렵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 `등록금 고지서`로 직결시키는 황 시인의 위트가 발군이다. 쉽게 쓰인 시 같지만 긴 수련의 시간 없이는 쉬이 나올 수 없는 표현이다.

문학평론가 고봉준은 “황수아의 시편들 곳곳에는 시인 특유의 자의식, 시에 대한 질문은 물론 시를 쓰는 행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들이 함축돼 있다”고 말한다. 기자는 여기에 딱 한마디만을 더 보태고자 한다.

“그 물음들이 황수아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가장 큰 근거다.”

/홍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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