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의 용바위. 용과 거북의 이중적 조화를 구현하고 있다.
탑 골에서 산길을 따라 얼마간 걸으면 남산신성이 있고 상서장과 포석정으로 이어지는 길과 만난다.

여기서 성벽에 새겨진 지나간 시절을 회고하면 입산객의 심사도 감상적이 될 것만 같은 오솔길이다.

그런 쓸쓸한 성이다.

성의 흔적이 끝나면 해목령으로 오르는 산길로 이어진다.

여기서 길을 벗어나 잠시 오른 편으로 눈을 돌리자. 봄이 오는 소리에 귀기울이는 척 눈을 돌리면 거기에도 큰 바위가 있어서 우리를 부른다.

거대한 바위이다.

그 앞으로는 바위로 둘러싸인 작은 터가 있고, 이름 모를 이의 민묘 하나도 조용히 불청객의 기척에 동정 살핀다.

이곳에 한 마리 용(龍)이 바위로 굳어 웅크리고 있다. ‘광철이’라 불리기도 하는 구렁이모습의 용이다. 아니 승천하지 못한 용이니 반룡(蟠龍)이라 하자.

이무기가 승천해서 용이 되지 못한 놈이니 이것은 반룡이다.

460×900×500여㎝ 바위뭉치에서 머리만 별도로 튀어나와 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똬리를 풀며 머리를 들고 풀숲에서 나오는 모습이다. 섬뜩하다.

몸의 일부가 큼직하게 굴곡져 있으므로 좌측은 저절로 꼬리부분이 되면서 돌출한 바위는 그대로 반룡의 머리가 되었다.

그 머리의 눈과 입, 그리고 꼬리에 해당하는 굴곡부분을 어떤 알지 못하는 이가 인공으로 쪼아 바위문화의 귀한 자료를 보태어 준다. 목은 저절로 S자로 굴곡을 지니고 있어 반룡의 형상을 새롭게 한다. 그 머리에 입을 저절로 그렇듯이 적당히 묘사하였다. 눈은 옆으로 길게 그어 놓아서 어찌 보면 졸리운 듯, 어찌 보면 싸늘하게 실눈 뜨고있는 듯도 하다.

오늘날 현대미술 속에는 대지미술(Earth Art)이라 하여 자연을 가공하여 작품화하는 영역이 있는데, 진정 이런 것이 우리의 조상의 손에서는 이미 뒷동산이나 동구 밖에 벌써 수 백년, 혹은 수 천년 전에 펼쳐진 것이었다.

머리 뒤편에도 알 수 없는 수식이 있다. 길게 새겨놓은 선이 그것이다.

길이 400㎝, 선 굵기 15~20㎝정도의 선을 새기면서 반룡은 변모된다. 긴 선각을 파서 반룡의 똬리 튼 몸과 머리 뒤의 넓은 부분을 별개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반룡의 몸은 반룡이 아닌 것으로 되어 버리고 머리는 다른, 달리 보니 거북과도 같다. 그곳이 거북의 머리로 되어 또 다르게 하나의 거북바위로 거듭나게 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현무도(玄武圖)를 연상케 하는 구성이다.

사신수도(四神獸圖)에서 북방을 담당하는 것이 거북이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는 뱀이 거북을 감고있는 형상으로 나타난다.

이를 현무(玄武)라고 한다. 여기서 그러한 면모가 발견된다. 어떤 모르는 이의 기상천외한 솜씨가 바위 하나에 두 가지의 멋을 부려 놓은 것이다.

수년 전 모 제품광고에서 현무도를 소재로 CF를 꾸민 것이 있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것이다. 평면으로 보던 것을 입체 동화상으로 가시화 된 걸 보게되니 그 실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바위로 구체화한 현무를 봤다.

뱀은 기피대상 1호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의 뱀이 길상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피하는 동물이, 그가 타고난 고유한 특성 때문에 파충류에 대한 원초적 공포를 딛고 다른 면을 고려하게 만든 것이다.

동면(冬眠)하러 땅으로 스미는 뱀이다. 봄이면 다시 지상세계로 나타난다. 찬란히 봄과 함께 허물을 벗으면서 다시 태어나 늘 젊음을 유지한다. 그래서 뱀은 지하세계의 사자라고도 생각하게 되었다. 하계에 들었다가는 다시 나오고 허물을 벗고 하는데서 재생의 상징으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신성·길상의 동물들이 그렇듯이 이중성을 띠고 나타나게 되었다.

자신의 꼬리를 삼키는 뱀 ‘우로보로스(Ouroboros)’는 스스로의 주검을 양식으로 삼는 우주의 완전한 이상이며 순환 재생의 상징이다.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의 지팡이에는 뱀이 휘감고 있다. 재생성을 기린 까닭이다.

오늘날 의료의 상징물에 뱀 두 마리를 배치하는 것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반룡 앞에 쓴 작은 무덤도 사자의 영면에 대한 아쉬움을 담았을 것이다. 그리워 그리워서 환생의 희망에서 묘를 썼다면 이 얼마나 애절한 사연일까.

<이하우·영일중 교사·>

    윤희정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