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지가 빠져라 냅다 서너 시간 달려와, 창창히 꼽힌 나무 울창한 골짜기 통나무집 다락방에 누워 눈 감으니 떠오르는 곳은 그 곳이라. 낮에 보았던 가문비나무 산딸나무는 어디로 가고 작은 쪽창으로 출렁 바닷내음이 쏟아진다.

쏟아져서는 낡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칭칭 휘감는 전봇줄과 낯익은 얼굴들이 휘돌아 흐르는 좁은 골목들을 풀어 놓는다.

올해 겨울은 유난히도 노을이 아름다운 날이 많았다. 저녁 무렵이면 팽나무에 하늘이 걸려 잔가지들이 붉게 일어섰고 나는 염창골 길갈피에서 어슬렁거리며 연애하는 황돌이와 이쁜이를 지나 포구에 나가서는 꽤 여러 번 해넘이를 구경하곤 했다.

그러한 일은 몇 날 며칠 반복되기도 하였는데 그 때마다 풍경들은 매우 낯익기도 낯설기도 하여 도무지 분간 못할 설레임을 느끼게 했다.

기름진 과메기 빽빽하게 널어놓은 시장통을 가로질러 가다보면 튀김집 할머니 앞, 채반 가득 노란 식용색소 선명한 가자미, 오징어 어디 바닷것들 뿐이랴. 고추와 삶은 달걀까지 튀겨져 할머니의 전대는 제법 볼록하고 종일 바삐 움직인 자국이 선명하다.

닭집을 지나며 “흰둥아~” 부르면 이젠 새끼티를 벗고 가슴 벌어지는 묶인 흰둥이, 제 이름인 줄 기막히게 알고 겅중겅중 뛴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새로 난 도로를 건너려고 잠시 서 있으면 오가는 소리들 크다. 휘릭휘릭 지나는 바퀴 틈에서 구룡가스집 상식씨와 남수 아빠 파란 트럭을 만나기라도 하면 건네는 투박한 인사가 어찌나 반가운지…. 냉큼 길 건너 감척어선 녹슬어 가는 부두로 가며 포장마차 기웃거리면, 싱싱한 바다 한 줌 건져다 수족관에 담아놓고 써억써억 썰어 파는 무명엄마 분주하다.

저녁이 그녀를 바쁘게 하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수협위판장 옥상엔 겨울 내내 갈매기들이 소복이 앉아 논다. 볼록하게 가슴 내밀고 빼곡히 앉았다가 한꺼번에 날아올라 하늘을 덮고는 다시 내려앉는다. 쇼핑백을 든 처녀와 할머니 두 엇, 그리고 붉은 명찰에 모자를 눌러 쓴 새파란 신병이 제 짐을 한 아름 짊어지고 대보행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 그 즈음 해는 붉은 빛을 바다와 하늘에 죄다 풀고는 은쟁반처럼 희고 동그란 맨얼굴로 용두산을 넘어 털썩 떨어진다. 슬그머니 막걸리 생각난다. 얼음공장을 지나 문 열고 들어서면, 빙긋이 웃으시며 탁주 두 병 흔들어 내오시고는 청각물회며 오징어젓갈 미역줄기 자꾸 날라다 주는 맘씨 좋은 그 양반 계시는 직매점. 끼니 전 막걸리 한 사발 벌컥벌컥 들이키면 가슴 깊은 곳 짠하게 일어서는 그 곳.

내 그 곳에 끼어있을 때 보다 산중에서 포구모습 더욱 선명하다. 천리만리 어딜가도 다를 바 없으리. 내 눕는 자리마다 그 포구 따라와 눕는 걸 보니 그는 이미 나의 연인이 되어 버렸구나. <수필가 권선희>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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