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고은 지음·향연 펴냄인문교양·2만3천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독서시대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인간이 쌓아올린 지식과 문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책 이외의 어떤 것에서 세상을 배울 수 있을까. 본지는 장르와 신·구간,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의 구분을 두지 않고, 한 권의 책에 주목하고자 한다. 책을 매개로 세상과 인간을 제대로 바라보자는 뜻에서다. 책 선정에는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이산하(시인), 박철화(문학평론가), 이경재(숭실대 국문과 교수), 전소영(문학평론가) 씨가 참여하고 있다.

- 편집자 주

스스로는 부정할 수도 있지만 작가들이란 `정의 내리기`를 좋아하는 존재다. 그렇다면, 한국전쟁 이후의 궁핍과 절망 그리고, 전망 상실로 인해 국민 대부분이 정신과 육체 모두를 가혹하게 앓아야 했던 1950년대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향연출판사에 의해 2005년 재출간된 고은 시인의 `1950년대`는 위 물음에 대한 답을 들려주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여러 차례 언급된 고은 시인은 특유의 드라마틱하고, 열정적이며, 단도직입 하는 `뜨거운 대답`을 펼쳐 보여준다.

`1950년대`는 1971년 `세대(世代)`에 연재돼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향을 얻어냈던 글을 모아 엮었다. 저자인 고은은 “나는 돌아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향수란 때로 삶의 전위성에 대한 독약일 수도 있으므로”라고 말하면서도, 재출간판 서문에선 1950년대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

모두가 가난했고, 그 가난 탓에 야수처럼 거칠었으며, 즐거움보다 슬픔이 지배했던 1950년대를 `애틋함`으로 추억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그건 가난과 거침과 슬픔을 단숨에 뛰어넘는 낭만과 인간미가 그때도 엄연히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그것도 지금보다 훨씬 뜨거운 양상으로. 예컨대 이런 이야기다.

1950년 6월 전쟁이 발발한다. 남한의 수도 서울은 완장을 찬 일군의 청년들이 간단한 인민재판만으로 우익인사의 생사를 결정짓는 무정부상태로 변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부여대(男負女戴)로 서울을 떠나 남하한다.

그런데, 충청도 어디쯤 살던 청년시인 신동문은 보통의 사람들과는 반대로 잊지 못한 첫사랑의 여인을 찾아 서울로 거슬러 오른다. 쏟아지는 포탄과 귀청을 찢는 폭격을 무릅쓰고. 하지만, 그렇듯 애타게 찾고자했던 첫사랑은 이미 서울에 없었다. 그때 그 명민했던 젊은 시인이 느꼈을 허탈감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하지만,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기억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신동문을 지배했으리라.

고은의 `1950년대` 속엔 이처럼 소설 같고, 거짓말 같으며, 21세기 사람들의 이성으론 도무지 이해가 불가능한 매력적인 이야기가 수도 없이 담겼다.

토속서정의 대가 김영랑의 어이없는 죽음, 소년병의 폭사를 목격한 미당 서정주의 정신분열, 부산의 다방에서 클래식을 들으며 음독한 시인 전봉래, 끊임없는 자기학대를 통해 천재로 완성된 화가 이중섭, 방랑과 구걸도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시인 천상병….

▲ 고은 시인                                                                                                                                                /연합뉴스
▲ 고은 시인 /연합뉴스

밀주의 취기와 한치 앞도 예측키 어려운 미래 탓에 방탕을 거듭했던 문인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1950년대`. 하지만 책은 암울한 회색빛이 아니다. 왜냐, 그들 모두는 “결국 아름다움이란 존재한다”는 것을 끝끝내 믿었던 `핑크빛` 낭만주의자였으니까.

일찍이 헤르만 헤세는 그의 책 `지와 사랑`에서 “모든 것은 지나간다. 세상에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고통 또한 마찬가지다”라고 서술했다.

전 세계를 오가며 시와 자유, 그리고 인간의 아름다움을 설파하고 있는 오늘날의 고은 시인을 보자면 그 역시 헤세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고통`이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던 1950년대부터 언젠가는 그 고통이 끝날 것을 믿었던 모양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