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시하다` 김혜순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문학연구·1만5천원

사실 아직까지 한국 사회는 여러 구조적인 면에서 남성중심의 사회라고 이야기 하는 이들이 많다. 문학계에서도 여성이 시를 쓰거나 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남성의 시쓰기보다 더욱 어려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 여성시를 대표하는 김혜순(62) 시인은 최근 펴낸 `여성, 시하다`(문학과지성사)에서 한국 문학에서 여성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하는`것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같은 땅을 딛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지만 남성에 비해 늘 차별과 혐오, 폭력과 소외의 게토 상태에 노출되어온 여성·몸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유독 한국문학에서 여성시인의 언어는 여성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몸에 씌워진 배타적 억압과 구속을 고통스럽게 경험하고 타인의 편협한 이해를 요구받아왔다는 것. 여성시인의 언어는 여성시인 스스로가 자신을 이방인, 난민으로 경험, 인식하는 것, 혹은 그에 따른 학습, 사유가 있지 않고는 발화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성은 자신에게 부과된 정체성(남성들이 발명한 언어, 그 언어로 점철된 시사詩史, 수사와 기호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열되고 투명한 약동의 목소리로 언어를 `몸하고 `시한다`고 이야기 한다.

독창적인 어법과 상상력으로 현대시의 새로운 전범이 돼 온 김 시인은 여성시인들이 쓰는 존재론적이고도 방법론적인 그 시적 발성의 주름 깊은 곳에 어떠한 심리적인 왜곡이나 피해자 의식, 악전고투가 숨어 있는지 따로 밝혀보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혐오나 교묘한 질시에 대한 내상을 드러내는 고백들 너머 여성시는 왜 가상의 피륙을 짜고 있는지, 텍스트의 짜임 속에 비밀을 감추고, 수치를 일구기 위해 어떠한 방법으로 위장하는지, 어떻게 다른 시적 영토를 발견하고 그 장소를 운행하는지, 화자의 설정과 그 문체의 결과 틀의 구축이 고백의 내용보다 더한 고백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해방이 되는지, 심지어 그 장소 없는 장소에서 어떻게 탈주체화를 실현하는지, 혹은 그 자리에서 공동체마저 꿈꾸고 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평론가 오연경은 김혜순의 시론은 그가 독창적이고 상상적인 언술로 갱신해온 한국 현대시의 미학이 도달한 지점이면서, 동시에 오랫동안 가부장적 사회의 법과 문학적 보편성의 논리에 갇혀 해석되고 연출되고 박제돼온 여자의 몸, 여성시에 대한 본질적이고도 제대로 된 독법의 필요성과 그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성, 시하다`에는 강은교, 고정희, 김승희, 김정란, 최승자의 시와 오정희의 소설을 들어 `여성이 시한다`는 것의 의미, 여성시인과 작가가 남다른 발성법과 언어체계, 상상력을 가지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10편의 글들이 묶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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