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올 여름 마지막 여행을 다녀왔다. 전남 여수는 유년 시절 아버지 따라 처음 본 바다를 품고 있는 고장이다. `바다`라고 발음하면 뒷목이 서늘해지고 입 속에 짠맛이 돈다. 눈앞이 파랗게 저물면서 어디선가 통통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 내면에 각인된 바다의 원형은 여수가 준 선물, 백석은 `통영1`에서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고 노래했는데, 내 `처음 바다`를 향해 가는 길에는 아버지 담배 냄새 나는 비가 내렸다.

대전 지날 때부터 빗방울 잦아들더니 여수는 볕이 쨍쨍했다. 돌게로 담근 간장게장을 먹으러 한 식당에 들어갔다. 여수가 고향인 친구 황종권 시인이 식도락 가이드를 책임졌다. 갓김치와 젓갈, 생선 조림 등 갖가지 반찬들을 거느린 돌게장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산처럼 쌓인 고봉밥이 금세 사라졌다. 자극적으로 짜거나 달지 않으면서 속살이 탱탱해 물리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서울에서 딸려온 걱정과 잡생각이 다 사라졌다. 밥도둑이 내 마음까지 훔친 것이다.

친구를 시인으로 키운 섬달천 바다를 찾았다. 근처 마을 조부모님 댁에 가 인사드리고 나오는데, 거동 불편한 할아버지께서 버선발로 마중하며 손을 꼭 잡아주셨다. 마당 장독대에 내려앉은 햇살에서 연필심 냄새가 났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고관절 골절로 요양병원에 누워 계신 내 할머니가 떠올랐기 때문일까, 코끝이 따가웠다.

사진작가들이 손에 꼽는다는 섬달천 노을은 황홀한 장관이었다. 그걸 보러 서울에서 다섯 시간을 달려왔다. 그 노을을 덮고 자려고 바닷가에 텐트를 쳤다. 낚시로 잡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회 뜨고 탕 끓여 술 마셨다. 시장에서 산 붕장어와 돼지 목살도 숯불에 구웠다. 둥근 달 모양이라 하여 달천도인데, 눈썹달 곱게 뜬 밤하늘을 머리에 이고 친구 어머니께서 텐트 펼친 방파제로 위문을 오셨다. 직접 담근 묵은지를 집어 뭉텅뭉텅 썰어 주시는 어머니 손을 나는 오래 바라보았다. 김치 국물 스미어 발갛게 물든 손이 동백꽃처럼 환했다.

이튿날 점심, 그 귀하다는 `하모 유비끼`(갯장어 샤브샤브)를 먹었다. 여름철에만 맛볼 수 있는 계절 별미로 가격이 만만치 않다. 싱싱한 자연산 갯장어 살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먹는 요리인데, 아무리 먹어도 젓가락이 멈추질 않아 당황스러웠다. 황종권 시인 부모님께서 화끈하게 한 판을 더 추가하고, 회까지 시켜주셨다. 친구 잘 둔 복을 제대로 누린 셈이다.

배를 타고 `황금 자라 섬` 금오도에 가 전라도 말로 `벼랑길`을 뜻하는 `비렁길` 산책도 하고, 바다에서 해수욕도 즐겼다. 루어 낚시로 큼지막한 무늬오징어 두 마리를 낚아 회와 통찜으로 요리했다. 낚시로만 잡을 수 있는 무늬오징어는 하모만큼이나 귀해서 나는 점심에 친구에게 받은 은혜를 어느 정도 갚게 됐다. 밤늦도록 향기로운 술이 비처럼 우리를 적셨고, 새벽에는 정말 시퍼런 비가 쏟아져 꿈결의 숙취까지 깨끗이 씻어줬다.

섬의 노을과 새카만 밤 아래 앉아서 나는 친구에게 “세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늘 아름답고 신기한 곳인데, 세상에 익숙해진 나는 점점 감동하지도 않고 또 놀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세상은 그대로이나 나는 자꾸 덤덤해진다. 삶에서 점점 경이에의 경험을 잃어버리는 게 안타까워 한 소리다. 부지런히 여행을 다니는 것도, 시간만 나면 산과 물로 걸음을 옮기는 것도 어쩌면 삶의 경이로운 순간들을 애써 회복하려는 안쓰러운 몸짓인지 모른다.

금오도 밤하늘은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그날 새벽 내내 생전 처음 보는 경이로운 천둥벼락을 해변에 내리꽂았다. 민박집 티브이와 냉장고 콘센트를 서둘러 뽑고, 이불 속에 잔뜩 웅크린 채 떨면서 겨우 잤다. 아침 하늘은 새벽의 흉포한 몽유병을 전혀 기억 못한 채 그저 맑았고, 그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모든 풍경은 다 새롭고 낯설었다. `감동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데는 역시 여행만한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