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간, 파이프, 선인장
김경후 지음
창비 펴냄·시집·8천원

1998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20년을 맞이한 김경후(46) 시인의 세번째 시집`오르간, 파이프, 선인장`이 출간됐다.

상실의 아픔을 간절한 언어로 노래한 두번째 시집 `열두겹의 자정`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이 시집에서 시인은 어둠과 죽음의 그늘 속에서 삶의 고통을 가누는 고독한 시정신을 보여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차가운 통찰이 깃든 자유롭고 활달한 이미지 속에 “그로테스크와 서정이, 유머와 불온이, 추와 미가 행복하게 혼숙하고 있”(손택수, 추천사)는 절박하면서도 절제된 시편들이 애잔한 슬픔과 뭉클한 공감을 자아낸다. 2016년 현대문학상 수상작 `잉어가죽 구두`외 5편을 포함해 55편의 시를 4부로 나눠 실었다.

김경후의 시는 아프고 쓸쓸하다. 부재와 소멸과 상실로 삶이 `절벽`이 돼버린 세계에서 “침묵에 들러붙어”(`박쥐난이 있는 방`) 살아가는 존재들의 비탄에 잠긴 목소리가 가슴에 사무친다. “세상 모든 정오들로 만든 암캐”의 처절한 죽음을 목격한 이후 “마음에 없는 말과, 말 없는 마음”을 갖게 된 시인은 “뱃가죽이 찢어지는 소리로 울 수 있었다”(`해바라기`)고 말한다.

시인은 “나는 많이 죽고 싶다”(`불새처럼`)고 거듭 외친다. 그러나 그 말에 깃든 뜻은 삶의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라 `없음`으로서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열망이다. 그것은 곧 삶에 대한 의지이자 자유에 대한 꿈이다. 어디에도 닿을 수 있는 무한한 자유인 곳, 시인은 이제 “죽은 것을 잃지 않”고 “잃은 것을 잊지 않기”(`침대`)로 다짐하며, “오랫동안 짓밟힐 글자들”(`야간 도로 공사`)과 “잡고 싶을수록 허옇게 부서져버리는 말들”(`수렵시대`)을 가다듬어 `텅 빈 적막` 속에서 `텅 빈 마음`으로 `텅 빈 백지`인 `시`를 꿈꾼다.

/윤희정기자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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