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얼마 전 대구 수성구에 자리한 용학도서관에서 `나무와 문학`이란 주제를 가지고 5주 연속으로 강의했다. 문학 말고도 역사와 철학이 덧대질 터여서, 나무 관련 인문학 강연이 15주 연속으로 진행되는 셈이다. `나무`라는 대상을 두고 문학, 역사, 철학의 관점으로 대중강연을 베푸는 기회는 흔치 않다. `길가메시 서사시`, `장한가`, `상리과원` 같은 작품을 중심으로 강연을 진행한 기억이 삼삼하다.

나무는 인간의 의식주와 긴밀하게 결합된 질료다.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뿐 아니라, 주택의 재료로도 요긴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무는 우리의 육체적-정신적인 피로와 고통을 경감해주는 고마운 대상이다. 사람이 나무에 기댄 형상을 본뜬 글자가 쉴 휴 (休), 대문 안에 한 그루 나무가 서있는 형상을 그려낸 글자가 한가로울 한(閑)이다. 나무가 서있는 넉넉하고 한가로운 집에서 나무에 기대어 쉬는 정경이 떠오른다.

1281년 무렵 일연선사가 집필한 `삼국유사`에는 `신단수(神檀樹)`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대개 `신단수`를 박달나무라고 생각한다. 나무와 관련한 문화재 전문가 박상진 교수는 그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박달나무는 수백에서 수천 년을 살아가는 나무도 아니고, 높이 자람만 꾀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포용할 드넓은 품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박 교수는 `신단수`를 우리 주위에서 당산나무로 자주 쓰였던 느티나무라고 주장한다.

720년에 탈고된 `일본서기`는 네 종류의 나무를 등장시키며, 나무의 용처(用處)까지 적시한다. 이자나기가 낳은 바람의 신 `스사노오(素箋鳴尊)`가 눈썹 털을 불어서 만든 녹나무, 가슴 털로 만들어낸 편백나무, 수염으로 만든 삼나무, 볼기짝 털로 만들어낸 나무가 금송(松)이라고 사서(史書)는 전한다. 녹나무와 삼나무로는 배를 만들고, 편백나무로는 궁궐을 짓고, 금송은 관재(棺材)로 사용하라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무령왕릉과 능산리 고분에서 금송으로 된 관재가 발견돼 고대 백제와 일본의 관계가 새삼 주목받기도 했다. 1597년 명량해전 당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활용한 전술은 `충파(衝破)`였다. 문자 그대로 적선(敵船)과 충돌해 깨뜨리는 간명하고도 대담무쌍한 전술이다. 그런 전술의 이면에는 일본의 주력 전투선 세키부네의 재질과 구조가 자리한다. 세키부네는 배 아래쪽이 좁고 미끈하여 속도전에는 능하지만, 충격과 회전에 취약성을 보인다.

세키부네는 주로 삼나무와 녹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조선수군의 주력 판옥선은 소나무로 만들어졌다. 단단하고 강한 재질의 소나무로 제작되고, 바닥이 넓은 평저선(平底船)이었던 판옥선은 속도에는 취약했으나, 충돌과 충격에는 대단한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불과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수군을 상대로 압승을 거둔 배경에는 울돌목의 복잡다단한 해류(海流)뿐만 아니라, 두 나라 선박과 관련한 차이가 엄존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내가 주목하는 것은 명량해전의 승리가 아니라,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는 구체성에 있다. 나무의 정체도 불분명한 `신단수` 기록을 1281년에 담은 `삼국유사`와 네 종류의 나무와 그 용처까지 지적한 `일본서기`의 차이에 주목하는 것이다. 어찌 본다면 이런 지점에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가 존재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노입자 크기로까지 물질을 쪼개는 시대에 우리는 살아간다. 보다 치열하고, 더욱 치밀하지 않으면 21세기 세계에서 제구실하고 살아가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범용한 일상의 사물과 관계에서 우리는 얼마나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대응하고 있는가. 온전하게 기록을 남기고 그것에 의지하여 앞날을 설계하고 있는가, 조금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