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산읍지 편찬약사조갑상 지음창비 펴냄·소설집

장편소설 `밤의 눈`으로 “비극적인 분단 한국사의 핵심을 파고들어 역사적 진실과 개인의 내면을 생생하게 되살렸다”는 찬사를 받으며 2013년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조갑상(68)의 신작 소설집 `병산읍지 편찬약사`(창비)가 출간됐다.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30여 년 동안 세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장편소설만을 발표한 과작의 작가가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2009년부터 올해 여름까지 발표된 작품들이 묶였다. 탄탄한 구조 안에 존재론적 고독과 둔중한 근현대사를 주로 담아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역사 속의 개인을 집요하게 조명하며 묵묵히 시대를 증명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오랜 시간 천착해온 소재인 `보도연맹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을 포함해 과거와 화해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이어지는 삶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작가는 이번 소설집으로 “이전보다 더 냉정하고 엄격하게 역사를 상대한다.”(해설, 양경언)

보도연맹은 해방 이후 좌익 쪽에서 활동한 사람들을 전향시키기 위해 1948년에 만들어진 교화 단체로, 이승만 정권 아래 좌익과는 무관한 사람들까지 가입시키며 30만명 규모로까지 확대됐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른바`빨갱이`를 색출하기 위한 예비 검속이라는 이름 아래 군경이 비무장 민간인들을 포함, 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학살한 일을 `보도연맹 사건`이라고 한다. 사건 발생 이후에도 계속된 좌우대립과 군부정권의 사건 축소, 은폐 작업으로 피해자가 빨갱이, 사상범으로 낙인찍혔으며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나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현대사의 대표적인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스스로 “애도 불가능한 죽음”이라고 명명한 보도연맹 사건은 소설가 조갑상에게 가장 중요한 테마이자 작가적 의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오랜 시간 긴 애도를 하듯이 여러 작품에서 이 주제를 변주해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보도연맹 사건과 관련된 여러 층위의 삶을 각기 다른 시간대에서 조명하는 방식으로 “어떤 이들에겐 살아 있는 진실이었을 이 사건을 삶의 원체험 자체로” 살리며 “가장 추상적인 사유체계라 할 법한 이데올로기의 동기들이 실은 얼마나 구체적으로 생의 갈피를 뒤흔드는지 예민하게 잡아”(해설)챈다.

▲ 소설가 조갑상
▲ 소설가 조갑상

`병산읍지 편찬약사`에서 보도연맹 사건은 처형을 앞둔 보련원들이 탄 차에 장인을 태워보낸 박 영감의 이야기(`해후`), 아버지를 잃고 오히려 반공에 대한 강박만 생긴 채 열성적인 극우보수가 돼 결국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홧김에 죽어버린 김영호씨의 이야기(`물구나무서는 아이`) 등에서 직접적으로 소환된다. 특히 표제작 `병산읍지 편찬약사`는 보도연맹 사건을 병산이라는 지역의 읍지 편찬 과정을 통해 정면으로 그린 작품이다. 읍지 편찬위원회로부터 읍지의 역사 부분 편찬을 의뢰받은 주인공 이규찬 교수는 초고를 작성하면서 과거 보도연맹 사건을 겪었던 지역으로서의 병산을 부각시키지만 편찬위원회는 “좌빨 글 싣는”(`병산읍지 편찬약사` 71면)다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 보도연맹 사건에 대한 기록 자체를 줄여달라고 요구한다. 소설은 이 교수가 해당 내용을 스스로 검열하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과거의 일을 올바르게 기록하고 기억할 의무를 지닌 한 개인이자 역사학자로서의 고민을 낱낱이 드러낸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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