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무감각에 익숙해진다는 뜻이다. 육신과 영혼이 건조해져서 밋밋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70~80대 노인들의 몸에는 65% 내외의 수분(水分)만 남는다. 신생아 몸의 수분이 90% 이상이란 걸 생각하면 대차(大差)가 난다. 아이들 볼을 살짝 꼬집었다 놓으면 이내 원상(原狀)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나이든 피부는 축 늘어질 뿐. 문제는 우리의 영혼마저 물기를 잃어버려 촉촉한 기운을 상실하기 십상이란 사실이다.

지난 5월 어머니 생신잔치에 함께하지 못했다. 무상한 일상의 번다(繁多)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탓이다. 그 사이 모친은 두 번이나 불의의 낙상(傷)을 경험한다. 엉치뼈에 금이 가고, 오른팔이 부러지는 중상이었다. 멀리서 안부전화나 붙들고 있어야 했던 나. 방학이 되어서야 비로소 상경이 가능했다. 민교협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와 묶어서 가까스로 한강을 건넜다. 우심한 가뭄에도 한강은 여전히 의연했고 융융(隆隆)한 흐름이었다.

왼손으로 수저와 포크를 쓰는, 늙으신 어머니는 쓸쓸해 보인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둘째 아들로 행복한 얼굴이다. 연락이 닿지 않던 큰손자가 어느 사품엔가 바람처럼 나타난 덕에 아연(俄然) 활기가 돌았다. 아우와 나누는 소주 한 잔에도 정감이 넘치고. 4시간이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지근거리(至近距離)의 어머니와 형제들. 그 무슨 대단하고 거룩한 일을 한답시고 관계의 이완에 눈을 감는단 말인가. 때마침 서울에도 비가 내린다.

하기야 태양처럼 뜨거웠던 시절, 나는 추석과 설 명절 때에도 학교에 나가곤 했다. 턱없이 부족한 공부와 자책(自責)의 강박(强迫)으로 자유롭지 못했던 시기. 그런 나날들이 속절없이 스러지고 아버지는 불귀(不歸)의 객이 되셨다. 세상 버리시기 전에 4~5차례 가족여행을 함께 하였기에 아쉬움을 조금 덜긴 했지만.

지금도 기억하는 장면 하나. 온가족이 정동진 해수욕장에 갔는데, 아버지가 매우 무료(無聊)해 보였다. “회를 좀 드시겠어요?” 아버지가 반색(斑色)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버지와 어머니, 작은애를 태우고 `등명락가사`에 들렀다가 작은 포구에 들렀다. 소주를 앞에 놓고 아버지와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이가 성치 못했으나 아버지 얼굴은 푸근했고 볼이 움푹 들어갈 정도로 회를 드신 기억이 오늘도 삼삼하다.

어쩌면 그런 장면 하나로 스스로를 용서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효와 불효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면서 말이다. 그 후로도 세월이 많이 흐른 다음에야 나는 알았다. 그분들에게 소용 닿는 것은 자식들의 크고 빛나는 명성이나 물적 풍요가 아니라는 것을. 함께 나누는 시간과 공간의 따사로움과 거기서 오가는 대화와 질박한 음식 같은 소소한 것임을. 그럼에도 그마저 순순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일은 비감(悲感)한 노릇이다.

소파에서 새우처럼 등을 구부린 채 잠든 모친은 아주 작고 여렸다. 노년에 동행하는 기력의 쇠진(衰盡)과 자신감의 상실이 모친에게도 찾아오는 듯하다. `호모 데우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불멸하는 인간 혹은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그 가능성을 타진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버린 자연과학과 기술발전의 영역이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상을 어떻게 재단할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시공간에 우리는 있다.

영원히 사는 인간은 두렵다. 그들은 올림포스 12신처럼 전지전능할 것이고, 지루해진 삶의 출구모색을 위한 자극(刺戟)을 찾아 헤맬 것이다. 최소한도의 애틋함과 아련함, 지나버린 날들의 회한(悔恨)과 쓸쓸함도 없이 지금과 여기에 탐닉(耽溺)하리라. 그리하여 인간의 육신은 탄력이 넘칠 테지만, 영혼과 정신은 아주 건조해져서 종당에는 `터미네이터`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짧은 서울 체류기간에 불쑥 찾아든 우울한 감상(感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