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시골에 살다보면 크고 작은 죽음과 대면하는 일이 잦다. 도회지에서는 새나 고양이, 쥐나 뱀의 사체를 마주할 일이 흔치 않다. 자연사나 농약으로 죽어가는 생명들이 더러 눈에 밟힌다. 안타까운 일은 달리던 자동차에 치여 죽는 `노상객사`다. 자연에서 낭비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까마귀와 까치 같은 청소 동물들의 한바탕 난리굿 판이 백주대로에서 벌어지기도 하니까.

며칠 전 아침나절 초목에 물을 주다가 대문 밖을 보아하니 참새가 버둥거리고 있다. 땅바닥에 모로 누운 채 날아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물 주던 손 멈추고 사발에 물 받쳐 들고 참새에게 다가간다. 태어난 지 오래지 않아 보이는 참새가 눈도 뜨지 못한 채 부리를 벌리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혹시 물을 먹을까, 하여 부리에 대주었으나, 그럴 기력조차 쇠한 듯하다. 날카롭고 가느다란 발톱 달린 두 발은 이미 경직이 시작되고 있는 모양새.

한참을 쭈그리고 앉았다가 녀석을 감나무 그늘 아래로 옮겨준다. 가는 길이나마 길고양이나 쥐의 양식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큼지막한 감이파리 위에 눕힌 녀석의 몸뚱어리가 더욱 작아만 보인다. `그래, 먼 길 편히 가렴!` 속으로 되뇌면서 작별을 고한다. 오후 두어 시 무렵 녀석의 형편이 궁금하여 확인해보니 영면한 뒤였다. 어찌어찌 이 땅에서 만난 미물의 최후를 동행한 나는 잠시나마 죽음을 돌이키게 되는 것이다.

백남기 농민의 사인이 병사에서 `외인사(外因死)`로 정정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이튿날인 6월 16일 `경찰개혁발족식`에서 경찰청장은 “고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들께 깊은 애도와 함께 진심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한다. 전임정권 아래서는 그토록 `병사(病死)`를 강조하고, 최소한도의 인간적인 사과도 미루더니 권력이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백남기 농민의 맏딸 백도라지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경찰청장과 경찰청을 비판하였다.

살인진압 인정하라, 그것을 주동하고 가담한 경찰관 7인을 기소하라, 살인적인 시위진압과 직사살수(直射撒水)로 부친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라, 향후 시위집회에 살수차를 배치하지 않겠다는 것을 명문화하라는 등의 내용이 회견문에 포함되었다. 사건발생 1년 7개월 만에 느닷없이 원격사과를 강행한 경찰청장의 저의(底意)는 무엇이고, 그런 자세가 합당하기나 한 것인지도 동시에 묻고 있었다.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를 최우선으로 삼아야하는 정부기관이 경찰청 아닌가. 그런 곳에서 시위대를 보호하기는커녕 직사살수로 고령(高齡)의 백남기 농민을 살해한 것은 이 나라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권력의 대표기관 경찰청과 검찰청이 국민을 적으로 삼아 행동하고 권력의 노예로 전락한 부끄러운 사건이다. 대한민국 최고라는 서울대병원의 사인(死因) 판단 역시 21세기 광명천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작태다.

참새를 살려볼 요량으로 대문 밖에 나섰을 때 주변에서 요란스레 참새들이 울고 있었다. 어린 것이 뻐드러져 땅위에 구르고 있는 참변에 속수무책인 그들이었다. 그러하되 녀석들은 동료애를 발휘하여 자리를 뜨지 않고, 최후를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참, 너희들이 우리 인간들보다 낫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녀석을 감나무 그늘 아래로 옮겨갈 때도 참새들은 동행하였다. 마지막 시점까지 죽음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미물들이라니?!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이려면, 민초들이 주인대접을 받아야 한다. 선거철에만 주인대접 할 것이 아니라, 민주정권이 들어서야 마지못해 움직이는 척하는 공권력이 아니라, 평시에도 시위 현장에서도 국민을 예로써 대하는 법도를 배워야 한다. 그것이 이른바 `우파`들이 주장하는 대한민국 `국격`을 상향시키는 가장 빠른 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