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한식<br /><br />대구경북부
▲ 심한식 대구경북부

요즘 부쩍 많이 `상생`과 `배려`,`소통` 등으로 개인주의가 아닌 타인을 위한 마음 씀씀이에 관한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이들 단어를 하나로 종합해 보면 동행(同行)이 아닐까 생각된다.

동행의 사전적 의미는 두 사람 이상이 길을 같이 간다는 뜻이다. 목적의식을 갖거나 무의식적인 동행이라도 길을 같이 가기 위해서는 서로 생각이 맞아야 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 함께 도움을 주고 받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가수 최성수는 1987년에 동행을 발표하며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 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라고 노래했다. 그 만큼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고 다시 한 번 살아가기에 용기를 낼 수 있다.

그럼 동행은 눈에 보이는 피사체인 사람만 가능할까? 움직이지 못하고 말을 못하는 유·무형의 자산은 동행의 대상이 될 수 없을까?

경산지역 고대문화유적인 고인돌(지석묘)에 관한 취재를 하면서 동행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더 생각하며 따뜻한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후손에게 다가오는지를 경험하게 됐다.

집터를 차지하고 농사를 짓는 농경지에 자리 잡고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훼손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묵묵히 고인돌과 함께 한 80여 년의 세월을 대수롭지 않게 표현하던 시골 어르신의 모습에서 `무형의 가치보다는 모든 것을 경제적인 이익으로만 생각하고, 나의 눈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는 현실에 주는 메시지를 우린 읽어 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빠졌다.

동행은 쉬우면서도 절대 쉽지 않다. 나의 것을 포기하지 않고는 금방 지치고 함께 나선 길을 후회하게 한다. 물질만능주의 세상에서도 보상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 문득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의 눈에 난 어떤 동행자일까?”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지금 누군가와, 비록 생각을 알 수도 없고 따뜻한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물과 동행하며 가치 없다고 주위에서 비난할지라도 목표지점에 함께 도달할 수 있는 동행자가 돼 보자.

경산/shs1127@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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