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가들
정영수 지음
창비펴냄·소설집

2014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한 정영수 작가의 첫 소설집 `애호가들`(창비)이 출간됐다.

등단작부터 지난해 가을까지 쓴 작품을 묶은 이번 소설집에는 “어느 고요한 순간에 느껴지는 매력적인 서정성과 유머”의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은 정 작가의 등단작 `레바논의 밤`과 2015년 문지문학상 이달의 소설로 선정된 `애호가들`을 포함해 총 8편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작가는 각 작품에서 삶의 고통을 통째로 견뎌내는 듯한 신고의 감정을 표출하며 개인과 세계이의 본질적 불화를 예민하게 그려낸다.

엉망진창의 세계에 그럴듯한 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풍자와 서정, 유머로 세상을 더욱 어지럽게 버려둔다. 세상이 온통 회색빛으로 지긋지긋할 정도로 지루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불가해한 모습으로 펼쳐지는 전율의 순간을 보여준다.

`애호가들`의 인물들이 살아가는 삶이란 “모두 기나긴 지루함에 포섭”된 채 견디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애호가들`에서 이런 일상의 지루함은 인물이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 정확하고도 예민하게 드러나며 작품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접속법 하나 이해하지 못하고 한 학기에 책 한권도 성실하게 읽지 않는, 형편없으면서도 성의까지 없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인물(`애호가들`),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신적 병증에 시달리며 병원을 전전해 받아온 약을 매일 먹고 쏟아지는 잠과 싸우며 밖에도 나가지 않은 채 외주 편집일을 하는 인물(`하나의 미래`), 하루 종일 초록불이 들어오면 버튼을 누르는 단순한 작업만을 반복하고 일상의 변화라고는 일주일을 주기로 바뀌는 사내 식당의 반찬뿐인 인물(`특히나 영원에 가까운 것들`) 등 작가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묘사로 인물들이 겪는 지루함을 그대로 전달한다.

또한 `애호가들`은 지긋지긋한 세계와의 불화를 익숙한 방식으로 해결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결의 재미를 자아낸다. 대학교라는 시스템 안에서 발생한 피해자로서의 `나`를 동시에 가해자의 위치에 놓으며 “풍자의 시선을 체험하게 하는 것을 넘어 풍자된 세계 자체를 체험”하게끔 한다거나(`애호가들`), 친구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듣고서도 상식적인 감정 교류에 미숙한 주인공을 내세워 “결정적으로 특별하다고 여긴 사건의 유일무이함에 대해서 의심”하도록(`지평선에 닿기`) 한다. 이처럼`애호가들`은 단순한 풍자를 사용하거나 상식적인 감정선을 따라가지도 않으면서, 이 사건들을 독특한 리듬으로 배치하며 “삶의 무미건조함과 지긋지긋함을 반전시키기보다는 반사”시켜, “엉망인 세계를 구조적인 모양으로 덩어리째 토해놓”(해설)는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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