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한식<Br>제2사회부
▲ 심한식 제2사회부

경산지역이 전국적 유명세를 타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문명고등학교가 국정교과서 단독 연구학교로 언론을 장식하더니, 최근에는 총기를 사용한 농협 특수강도사건으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슬프게도 고향에 정착하고자 귀촌을 실행에 옮겼고 지역에 동화되며 순박했던 농민이 생활고로 특수강도가 됐다.

얼굴을 알고 지내던 사람도, 가족도, 지역도 당혹감에 빠졌다. 물질만능주의와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농민을 특수강도로 변하게 한 현실에 상실감마저 느낀다.

이 사건을 보며 성경에 단 한 번 나오지만 큰 울림을 주었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문장을 생각한다. 다니엘서 3장 18절에 나오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는 다니엘의 세 친구가 진리를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내놓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현실을 반추해 볼 수 있게 한다.

우린 `때문에`에 갇혀 살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내 행동이 정당하다”는 핑계를 항상 준비해 둔다. 이런 현상은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대선 후보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후보자들 모두가 `때문에`를 외치고 있다. 선거의 속성과 권력지향주의로 인해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할 정당성만을 말한다.

우리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를 입에 올리는 순간 피해를 본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흠이 있는 것 같고, 상대방이 날 무시할 것이라는 피해의식에 시달린다.

경산 농협강도 피의자가 “내가 지금은 힘이 들어도 노력하면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기다리는 가족 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한 발만 뒤로 물러서 현실을 바라보는 용기를 내보자. 창조주가 많은 것을 주지 않았다 할지라도 내가 가진 생명과 살아있음에 감사하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는 먼 곳이 아닌 우리 삶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경산/shs1127@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