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희선<br /><br />숙명여대 교수·기초교양대학·정치학박사
▲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기초교양대학·정치학박사

“막강한 권력자나 절대적인 복종에 익숙한 사람들은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자신들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확신에 빠지기 쉽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태극기 부대의 시위 모습을 보며 존 스튜어트 밀이 강조한 토론의 중요성을 생각해 본다. 합리적인 토론과정을 통해 사람을 키우는 문화와 교육이 부재했기에, 옳고 그름에 대한 상식적인 판단에 기반하지 않은 맹목적인 행동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토론을 하면 사람이 보인다. 토론은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고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며 반론과 재반론이 이어지는 대립적 성격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상반된 입장을 확인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자신의 주장이 왜 타당한지 근거를 대며 설명할 수 없다면 이는 토론이라고 할 수 없다. “자기 생각으로는 어떤 생각이 매우 진실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은 그것이 토론을 통해 검증되지 않았다면 편견일 수 있다”고 밀은 지적했다. 이처럼 토론은 이성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 논쟁이자 질문과 답변의 역동적인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의사소통인지라 토론을 하다보면 서로의 그릇이 보인다.

토론 능력은 하루 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윗사람의 의견에 무조건 따르고 강자의 입장에 순응하는 문화에서 토론을 제대로 하는 건 쉽지 않다. 무엇보다 권위주의를 극복하고 좌우를 구분하는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야 토론이 가능하다. 자유롭고 열린 토론의 경험이 부실한 까닭에 한국사회는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갈등을 풀어가기 보다는 목소리를 높이거나 대세를 따라 처신한다. 각자의 말의 무게가 동등하게 여겨지고 자신이 믿는 바의 근거를 학습하는 교육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무늬만 토론`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하는 세 번의 토론회에만 참석했다. 그마저도 최순실이 지휘한 것에 따라 토론의 답변 내용을 준비했다고 한다. 박근혜 후보는 당시 문재인 후보의 질문에 대해 구체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그래서 대통령이 될라고 하는 것 아니에요. 제가 이번에 대통령이 되면 할 겁니다”라는 동문서답식 모습을 되풀이 했다. 결국 불충분하고 부실한 토론 과정은 후보를 충실히 검증하지 못했고, 선거는 박근혜 후보의 이미지만으로 결정됐다. 당선 이후로도 박근혜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원고를 낭송하는 연설만 했을 뿐 국민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심지어 탄핵을 당하고 기자들을 대면한 자리에서도 일체 질문을 받지 않았다. 형식만 남은 허술한 토론으로는 인물을 제대로 검증할 수 없었음을 뼈아프게 보여주었다.

조기 대선이 확정된 이 시점에, 토론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필요하고 중요하다. 토론은 단순한 말하기 기술이 아니라 설득을 통해 상대방과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에, 수평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소양과 능력을 요구한다. 대통령 직함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고자 출사표를 던진 후보라면, 서로의 의견이 부딪치는 토론의 장에서 자신의 자질과 역량을 보여줄 책무가 있다. 토론은 다른 후보와 구별되는 자신의 시각과 의견이 있어야 하고, 사안을 바라보는 통찰력과 문제의식을 보여줄 수밖에 없어 사실상 만만하지 않다. 그러나 국정을 책임질 후보라면 일방적 웅변이나 연설이 아닌 토론과정을 통해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보여줘야 한다.

다시 강조하건대, 후보들간에 토론이 자주 있어야 한다. 토론 기회를 많이 만들어서 후보자들의 진면목이 유권자들에게 많이 노출되어야 한다. 지난 대선의 전철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수차례 토론 자리를 마련하여 유권자들이 후보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미지와 수사에 현혹되지 않고 누가 앞으로 우리 사회를 책임지고 이끌어 갈 만한 올바른 리더십을 가진 인물인지 토론을 통해 면밀히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고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토론만 보더라도 그(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