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호<br /><br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그저께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어떤 출판 지원에 관한 발표가 있었다.

평소에 왕래하는 출판사 대표 두 분의 지원대상 선정을 축하해 주기로 했다.

이제 나이가 제법 됐고 그래서 청력도 좋지 않고 기력도 달려 시끄러운 것을 감당할 수 없는 세 사람이 허름한 술집에서 선정을 자축했다.

발단은 송인이라는 서적도매상의 부도사태였다. 출판사들은 책을 발간하면 일단 창고를 겸한 유통업체에 넣고 교보나 영풍 같은 대형 소매점들, 송인 같은 도매상을 통하여 시중에 책을 공급한다. `예스24`나 `알라딘`을 위시한 여러 인터넷 서점들도 창고에서 도매를 거치지 않고 구입자들의 손으로 직행하게 된다.

크고 작은 출판사들이 모두 그런 시스템으로 움직이는데,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곳은 도매상 쪽이다. 대형서점이나 인터넷 쪽은 출판사에 주문을 넣으면 한달치씩 대금을 현금으로 지불해 준다. 하지만 도매상은 때로 몇 달치 어음을 끊어 주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늘 다 지불하지 않고 잔금을 남겨놓는 식으로 움직인다.

송인은 십수 년 전에도 한번 부도가 나 출판사들을 괴롭힌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부도가 났다 해서 보니 송인이었고, 그 경과 과정에 관한 여론도 아주 좋지 않았다.

딱한 것은 출판사들이고, 그 중에서도 작은 출판사들이다. 특히 거래선이 많지 않거나 유통을 송인 쪽에만 걸어놓은 출판사들은 피해나 타격이 크지 않을 수 없다. 또, 큰 출판사는 도매상을 상대로 돈을 미리 지급받을 수도 있는 등 도매상과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작은 출판사는 주면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약자요, 을이다.

속된 말로 송인 부도에 돈을 물린 출판사가 하나둘이 아니요 그중에 작은 출판사들도 수없이 끼어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정부 차원이나 지자체 차원에서 곤경에 처한 출판사들을 돕겠다고 나선 것. 비록 큰 액수는 아니라 하나 돈을 떼인 출판사들의 책을 사주기도 했고, 각종 지원책을 내놓는 중에 출판 원고를 심사해서 지원금을 주는 방안도 마련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 공고가 뜨자 관계된 출판사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던 바, 나 또한 그러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내가 관계하는 출판사가 조만간 출간하기로 된 내 소설을 가지고 이 지원사업에 응모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저자에게 돌아가는 지원은 아니고 출판사의 출판 비용을 보전해 주는 식이지만 이것도 선정 사업은 사업이니 관심이 없을 수 없다.

있었다. 듣기로 사백 건 정도 지원을 하기로 했다는데, 그 대상 목록에 내 소설의 제목도 끼어 있다.

하지만 나는 이를 확인한데 그치지 않고 가나다 순으로 나열된 지원 대상 목록을 좀더 살폈다. 내가 알고 있는 작은 출판사들의 이름이 들어 있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향연, 답, b 같은 출판사들의 이름이 발견된 게 내 일 같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요즘 경제가 엉망이라고들 한다. 가는 곳마다 돈 가뭄이라 한다. 허나, 출판업종만 한 불황도 다시 찾기 어려울 것이다.

책만큼 팔기 어렵고 이문 남기기 어려운 게 없다. 워낙 싸고 워낙 안 읽는다.

ㅡ송인 잔고가 얼마나 되셨죠?

ㅡ천이백만원요.

ㅡ그쪽은요?

ㅡ육천만원요.

ㅡ왜 그렇게 많이?

ㅡ죽어라 냈더니 그렇게 됐네요.

다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책은 이 나라에서는 아이들 책 말고는 사치품이다. 쉽게 주머니를 열 생각들 안 한다.

그런데 물경 육천만원이라니. 오백만원 지원을 받게 되면 뺄셈을 해서 오천오백만원 남았다. 이날 술값은 내 차지일 수밖에 다른 도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