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도형이나 입체를 그릴 때 최초 출발은 점(點)이다. 점과 점을 이으면 선(線)이 되고, 선이 셋 이상 모이면 면(面)이 된다. 면을 여럿 모으면 다면체가 된다. 다면체 가운데 모서리의 길이가 같은 것을 정다면체라 한다. 인류가 3차원 가시광선 세계에서 찾아낸 정다면체는 불과 다섯 개. 정삼각형을 기반으로 한 정사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와 정사각형을 기초로 한 정육면체, 그리고 정오각형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정십이면체가 그것이다.

점을 도시 혹은 농촌 같은 정착지라 생각하면 점의 거주자는 시민이거나 농민이다. 점과 점을 이어주는 선의 구실을 하는 자는 상인이며, 선으로 연결된 공간인 면의 거주자는 유목민이 된다. 이런 사유를 발전시켜 유목세계에 주목한 일본인 연구자가 스기야마 마사아키다. 현대 일본에서 몽골연구 분야에서 최고권위를 인정받는 그는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에서 점, 선, 면의 사유를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장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4대문명`이라는 개념도 점의 사고에 익숙한 정주의식(定住意識)에서 발원한다. 그 점이 매우 크다 해도 유라시아 전역을 포괄할 수 없다. 이집트 북부 지역까지 아우르는 아프로-유라시아(Afro-Eurasia)를 상정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정착민이 발전시킨 문명을 다른 지역으로 전파하고 교류하도록 인도한 유목민을 배제한 유라시아를 상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유목민들이 이동수단으로 삼은 대표적인 동물은 말과 낙타다.

낙타는 주로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지역의 대상(隊商)들이 사용했다는 면에서 논외로 하자. 요즘 한국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말`에 초점을 두고 생각한다. 젊은 역사학자 강인욱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는 적어도 2~3만 년 전부터 말을 식용(食用)으로 삼았다고 한다. 구석기시대의 말 그림은 프랑스와 러시아 알타이 지역에서 발견되는데, 라스코 동굴벽화는 채색화이며, 알타이 칼구타 유적의 말 그림은 암각화 형식이라고 한다.

고기로 활용된 말이 기원전 3500년 전부터 운송수단으로 등장한다. 말이 운송수단의 총아가 되는데 필요한 세 가지 마구가 차례로 발명된다. 재갈과 안장, 그리고 등자다. 기원전 3000년 무렵 사용되기 시작한 재갈은 말을 순치(馴致)시키는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이동과 정지를 적시에 명령하고 실행하는 도구가 재갈이었다. 재갈은 고삐와 전차발명으로 이어져 기동력이 뛰어난 전차의 발명으로 이어진다. 초원을 질주하는 전차군단을 연상하시라.

재갈에 이어서 장거리 이동에 필수적인 안장이 발명된다. 기원전 7세기에 스키타이 군사들이 카펫을 안장으로 사용했고, 흉노는 나무안장을 발명했다고 한다. 안장 없는 승마의 불편과 불안정성은 재언의 여지가 없다. 그러다가 마침내 서기 3~4세기 무렵 고구려와 선비족이 금속제 등자를 발명해 말을 타고 내림에 불편함을 제거한다. 등자는 말 위에서 자유자재한 동작 가능성을 기수에게 선사함으로써 수렵과 전투의 일대전환을 가져온다.

스키타이가 등자를 발명했다고 주장하는 정수일 교수는 고삐나 재갈, 등자가 역사의 대변혁을 발생시켰다고 말한다. 일견 사소해 보이는 이런 발명이 유목사회와 군대조직에 일대파란을 가져오면서 세계사의 변혁을 추동했다는 점에서 그것을 `역사적 사변`이라 부른다. 말이 없는 고대사와 유목사회 그리고 전투장면을 상상할 수 없다. 이동과 목축과 전쟁의 가장 일차적인 요소인 속도와 운송에서 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다. 열차를 철마(鐵馬)에 비유하는 까닭은! 근대의 상징으로 표상되는 열차와 그로 인해 밀려난 말의 대비는 100여 년 전 일이다. 국정농단의 비선실세와 그 여자의 딸과 굴지의 재벌 삼성이 `말`로 인연을 맺었다니 말의 가치가 새삼스럽다. `오관참수`와 `천리주단기`로 의리의 대명사가 된 관우의 `천리마`와 30억 짜리 `명마` 블라디미르를 생각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