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1945년 8월 9일이라고 했다. 당시 나가사키는 크지 않은 도시 같았다. 성당이 있었다 했는데 피폭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듯했고 그곳이 지금은 기념관, 아니 추모관이 되어 있었다.

사람이 벌이는 일 중에 전쟁처럼 어리석고 모순적인 것이 없으니 살려고 세상에 나왔건만 남도 죽이고 자기도 죽이는 짓을 저지르다니.

원폭은 끔찍했다. 건물은 잿더미가 되고 열폭풍에 녹아버렸다. 사람도 숯처럼 변해버리고 산 사람도 뜨거운 열에 피부가 벗겨지는 참화를 당했다.

새로운, 끔찍한 살상병기의 실험 대상이 되어버린 일본. 이 추모기념관은 미국의 원폭 투하를 말없이 힐난하고 있었다. 이 공간끝에 지구상 여러 곳에서 있어온 핵실험을 열거함으로써 자신들이 핵을 쓸 줄 모르는 희생양인 듯한 포즈를 `평화`라는 이름으로 취하고 있었다.

죄없이 군국주의, 제국주의의 희생자가 되어버린 나가사키 사람들. 한국인이기에, 만약 이 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끝나지 않았다면 지금 일본말과 일본 역사를 이 나라 말과 경험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을지도 모르기에, 나는 그들을 충분히 애도할 수 없었다.

아니, 죄없이 죽음을 당해야 했던 나가사키 사람들을 나는 한없이 동정하고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여기에까지 역사의 해석과 입장의 차이가 노출될 수밖에 없음을 괴로워 했다.

2월의 나가사키는 따사롭고 한가롭게만 보였다. 구식 전차가 노면을 따라 덜커덩거리며 지나가고 거리의 사람들은 아무 근심 걱정 없는 듯했다.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 속사정 내색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살아가는가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스물여섯 성인들이 순교한 것을 기념하는 곳으로 갔다. 현재 일본은 기독교와 천주교를 합한 신도수가 전체 인구의 1%도 되지 않는다는데, 옛날에는 그럼에도 이런 비극적인 순교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순교한 성인들의 부조가 모셔진 벽화를 지나 추모 기념관으로 들어가자 거기에는 알지 못하던 사연이 하나 펼쳐져 있다. 가톨릭 공간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동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 하나가 전시되어 있었던 것. 여기에 친절하게 한글 설명이 부기되어 있다.

“삼국시대 한반도에서 제작된 것으로 여겨짐. 나가사키에서 몰래 천주교를 믿었던 크리스찬의 집에서 예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전해져 옴.”

그러니까 그 옛날에 이 나가사키 사람들은 박해를 피하기 위해 미륵보살상을 예수를 대신하여, 아니, 예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모셨다는 것이다.

나가사키에서는 미륵보살이 예수가 되고 예수는 미륵보살로 화현하여 신의를 나타낸다. 그렇다면 또 거꾸로 부처가 예수로 화현하여 환난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구원과 해탈로 이끌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이 추모관의 2층에는 순교자들의 유골을 모신 곳이 있다. 이 순교의 중심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마리아 관음`인가 `관음 마리아`인가 하는, 여덟 개의 흰빛 조각상이다.

피에타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지극한 슬픔을 형상해 놓은 것이다. 세상에 자식을 잃은 어미의 슬픔처럼 지극한 것 없기에 피에타는 모든 사랑, 사람들을 한없이 안타깝게 동정할 수밖에 없는, 대자대비, 지극한 사랑의 상징이다.

이 성모마리아가 이곳 나가사키에서는 관음보살이 되고, 다시 관음보살은 마리아로 화현하여 모든 `아들`된 이들의 아픔과 고통과 슬픔을 `듣는다` 관음이다.

나가사키는 옛날부터 중국과 한국의 문물이 바다를 건너 전해져오는 곳. 동시에 난학, 즉 네덜란드학이 일찍이 꽃핀 서양 문물의 도래지다.

아시아의 많은 것들의 `끄트머리`가 서양과 만나 새로운 것을 이룬다. 불교가 예수교가 되고 예수가 부처가, 보살이 되고, 삶이 죽음이 되고 죽음이 삶을 가리킨다. 그리고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나가사키는 새로운 삶을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