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시 삼백수정민 엮음문학과지성사 펴냄

먼지 쌓인 옛 문헌들을 탐구해 그 속에서 깊은 통찰을 길어 올려 소개해온 인문학자 정민 한양대 교수의 신작 `우리 선시 삼백수`(문학과 지성사)가 출간됐다.

삼국시대부터 근대까지의 시조 삼백수를 가려 뽑고 풀이한 `우리 한시 삼백수: 7언절구 편``우리 한시 삼백수: 5언절구 편`에 이어, 이번에는 스님들의 선시(禪詩) 300수를 소개한다. 고려 중기의 승려 우세 의천부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만해 한용운까지 서른한 명의 스님들이 무심한 듯 던지는 다섯 자, 일곱 자의 말. 비슷해 보이지만, 행간을 살피면 문득 다른 세계가 보인다. 소순기(蔬筍氣), 즉 채소와 죽순만 먹고 살아 기름기가 쫙 빠진 담백한 언어의 매력을 정민 교수의 아름다운 해석으로 만날 수 있다.

산속 절의 적막한 풍경, 늙어감의 덧없음, 생의 회한, 무(無) 자 화두, 무생(無生), 깨달음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 선시는 언뜻 보면 다 그게 그거 같다. 화두처럼 던져져 그 속뜻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정민 교수는 옛 문헌이 익숙지 않거나 불교 용어가 낯선 독자들이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선시 원문을 우리말로 풀이하고 어휘 풀이와 간결한 비평을 덧붙였다. 그는 깊은 사유를 담은 농축된 말에 평을 덧붙이는 것이 오히려 군소리가 될 여지가 있다며 자신의 비평을 하나의 독법으로만 참고할 것을 권한다. 스님들의 정제된 언어는 우리가 생각할 공간을 한껏 넓혀놓는다. 선승들의 말씀을 가만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하나의 세계가 열리고 생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삼만 축의 시서에도 들어 있지 아니하고

오천 함의 경전과도 아무 관계없다네.

말하기 전 담긴 뜻이 이미 새어 나오니

문자로 수고롭게 다시 가리키리오.”

-`언외(言外)`

“아침 내내 밥 먹어도 무슨 밥을 먹으며

밤새도록 잠잤어도 잠잔 것이 아니로다.

고개 숙여 못 아래 그림자만 보느라

밝은 달이 하늘 위에 있는 줄을 모른다네.”

-`아침 내내`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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