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동안의 행복파우스토 브리치 지음민음사 펴냄·소설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파우스토 브리치의 데뷔작 `100일 동안의 행복`(민음사)이 출간됐다.

파우스토 브리치는 국립 이탈리아 영화학교를 졸업한 재기 넘치는 영화 감독으로, 데뷔작 `시험 전날 밤`이 `다비드 디 도나텔로` 상을 포함해 여러 상을 받으며 주목받았으며 `애프터 러브`로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말기 암으로 살아갈 날이 100일밖에 남지 않은 남자의 하루하루를 유쾌한 시선으로 그린 `100일간의 행복`은 그의 데뷔 소설로, 20여 개국이 넘는 나라에 판권이 팔리는 쾌거를 이뤘다.

`100일 동안의 행복`은 사랑하는 가족과 평범한 일상을 누리던 체육 교사 루치오가 갑자기 말기 암을 진단받고 난 후 스스로 조력 자살을 선택해 100일 후에 죽기로 결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현대인의 불치병 중 하나인 암이라는 소재는 인간사를 다루는 문학과 드라마 분야에서 그동안 다양하게 다뤄져 왔지만, 파우스토 브리치는 특유의 이탈리아적인 감성으로 `죽음`이라는 대전제 앞에서 어떻게 유머와 존엄을 잃지 않고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지 그린다.

`100일 동안의 행복`은 이탈리아 로마 한복판의 한 평범한 가정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 즐거운 독서의 기회가 될 것이다.

 

소설은 갑자기 맞닥뜨린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상황 앞에 선 루치오의 목소리를 시종 유쾌한 어조로 전달한다. 헬스클럽 강사로 건강하기만 했던 자신에게 닥친 `간세포암`이라는 단어 앞에 혼란스러워하던 그는 곧 마음을 정리한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채 헬스클럽에서 바람을 피워 아내에게 큰 실망을 안겨줬던 루치오는 무엇보다 아내 파올라에게 용서받고, 아이들에게 행복한 추억을 선사하는 것을 목표로 세운다.

루치오는 장인어른이 만든 도넛을 매일 아침 먹으며 행복을 느끼고, 가족, 친구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면서 삶의 마지막 100일이라는 시간을 하루하루 보내 나간다. 마지막에 이르러 루치오는 마지막 소원을 이루려 가족과 함께 하이킹 여행을 떠난다. 어린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하는 마지막 여름 휴가라는 것을 모른 채 즐거이 뛰놀지만 떠나야만 하는 루치오의 심정은 절절하다. 루치오가 보내는 100일 동안의 단순한 일상을 그린 이 소설은 가족과 주변 인물들과 소통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소설은 병과 죽음이라는 대전제로 시작하지만, 시종일관 낙천적이고 경쾌한 문체로 진행된다. 특히나 루치오는 외조부모 밑에서 자란 결손가정 출신이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구김살 없이 밝게 자라 온 캐릭터다. 아내를 만나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헬스 트레이너로 일하면서 따로 청소년 수구 팀을 이끌기도 하는 등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하는 그는 삶과 사랑에 적극적인 전형적인 이탈리아 남자다. 소설에 색다른 향기를 불어넣는 것은 소설 곳곳에 가득한 이탈리아적인 분위기다. 루치오와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펼쳐지는 이탈리아의 창조적인 발명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일화나 이탈리아 출신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서의 파우스토 브리치의 문화적 자부심이 느껴진다. 가족 친화적인 문화, 창조적정신, 예술에 대한 애호, 남녀 간의 자유로운 사랑 표현 등, 이 소설에는 이탈리아 작가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낙천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비록 삶의 끝이 죽음일지라도,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이들의 정신은 부정과 포기가 익숙한 사회적 분위기에 한 줄기 밝은 빛을 던진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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