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후배들이 결혼을 하는데 축사를 해줄 수 없겠느냐고 했다. 축사라니, 그런 절차가 결혼식에 있었던가? 무슨 뜻인지 물으니 자기들은 주례를 모시고 결혼할 생각은 없고 자기들끼리, 그래도 부모님은 모시고 할 텐데, 중간에 나와서 축하의 말을 몇 마디 해달라는 것이었다.

주례 선생이 안 계신 결혼식이라. 글을 읽고 쓰는 처지라 늘 머릿속에 장면을 상상으로 그리는 습벽이 있다. 까닭에 그런 결혼식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한국의 결혼식에서 주례사 없는 결혼식을 본 적 없었다.

주례가 서 있을 자리가 텅 비어 있는 가운데 신랑 신부가 입장을 한다? 그것, 참. 발상이 새롭기는 하다. 그래도, 거기 서 있지 않을 주례 대신에 내가 축사라고 나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한다? 난감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사람은 올해로 나이가 마흔두 살, 마흔 세 살. 여자가 한 살 위로 연상연하 커플이다. 사귄지 무려 18년이나 되었지만 드디어 결혼까지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불과 1,2년밖에 되지 않았다 했다. 여자는 직업이 동화작가, 남자는 비평을 하고 가끔 소설도 쓴다나. 결혼식은 구청 결혼식장에서 하게 되고 그래도 신혼여행은 제주도로 간다 했다.

얘기를 듣고 보니 나쁘지 않다. 요즘 새로운 결혼식 풍속도에 나 자신도 한 번쯤 적응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축사 부탁도 날짜가 꽤나 가까워서야 해온 까닭에 오후 세 시 결혼식에 맞추기 위해 쇼를 하다시피 해야 했다. 전라북도 무주에서 무슨 문학상 시상식에 심사평을 해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전날 밤 대전까지 승용차를 운전해서 내려가 자고 다음날 일찍 무주 행사에 참석한다. 대전까지 올라와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KTX로 서울역까지, 여기서 지하철로 영등포구청까지 간다.

이렇게 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짜놓고 그대로 실행을 하고 나서야 예식장에 도착해 주어진 `임무`를 이행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또 생겼다. 그날 부케를 받은 여성이 내가 아주 아끼는 비평가였던 것을, 그로부터 불과 2주일만에 똑같은 축사를 부탁해 온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람. 또 얘기를 듣고 보니 사정이 딱하다. 아버지가 후두암으로 재발까지 있으셨는데 이번에 또 `삼발`이 되었다는 판정을 받으셨다 했다. 수술 날짜가 잡혔는데, 자기가 맏딸이라 아무래도 급히 결혼식이라도 치러야 후회가 없을 것 같다 했다.

이렇듯 급하게 결혼을 결정하다 보니 예식장에 빈곳이 없다. 겨우 찾아낸 게 누군가 예약했다 없앤 자리. 이 예식장 사정에 맞춰 날짜를 잡고 보니 이렇게 서두르게 되었다나? 신혼여행은? 신랑 직장 사정상 당분간 가지 않고. 신혼집은? 일단 결혼식만 올려두고 혼인신고 하고 봄에 집들 날 때 들어가기로 하고. 맙소사.

이렇게 해서 나는 다시 한 번 뜻하지 않은 결혼식 축사를 감행하게 됐다. 12시 결혼식에 맞춰 가니 축하객들 수런거리는 소리 중에 이 커플도 역시 연상연하라는 소리가 들린다. 세 살 차이라니 놀랄 것은 없다.

축사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궁리하다 몇 가지 생각해 둔 게 있기는 있었다. 우선, 돈과 지위와 명예를 따라다니지 말고 보람 있는 삶을 살려 하는 게 좋겠다. 다음으로, 그러려면 젊은 사람일수록 삶의 이상이 있어야 한다. 또 다음으로, 자기 식구만 위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넓게 위하는 사람들이 되라. 그 다음에 서로 사랑하라.

그렇게 축사를 하기는 했는데 하면서도 요즘 결혼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

한 십 년 되었나. 그때 어떤 결혼식에 갔는데 신랑이 만세삼창을 하기에, 앞으로 결혼이 큰 과제가 되겠구나 했는데, 바로 그런 시대가 닥쳤다. 남자도 결혼하기 힘들어 하고 여자도 그렇다. 자기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요즘 젊은이들도 결혼을 하려 하고, 또 실제로 하고, 아이를 낳고 살려고도 한다. 그렇게 삶은 이어지고 새로운 날은 오고 그 위에 새로운 세월이 쌓여가는 것이다.

마지막 하나. 그러나 결혼이 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말라. 미래의 삶의 형식은 달라질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