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재벌들은 이재(理財)에 밝다. 지난 12월 17일 서울시내 신규특허 면세점 사업자로 롯데 월드타워, 신세계 센트럴시티, 현대 무역센터가 선정됐다. 이로써 기존의 롯데 소공과 코엑스, 신라 서울, 동화, 호텔신라, 한화, 현대산업개발, 두산 등 13곳의 면세점이 각축을 벌일 전망이라고 한다. 면세점들 가운데 롯데와 호텔신라, 한화와 현대산업개발, 두산과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7곳이 재벌 대기업에 속한다. 이래도 괜찮은지 의문이다.

신규 면세점 사업권은 일단락됐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이 중론(衆論)이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국정농단`사건과 관련해 최씨가 면세점 사업에 개입한 의혹을 가지고 검찰과 특검수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씨를 조사한 검찰은 신규면세점 추가특허 특혜의혹과 관련하여 기획재정부와 관세청, 롯데와 SK그룹도 압수수색했다. 향후 특검에서도 면세점 특허심사 로비-특혜의혹을 조사할 것이라 한다.

검찰과 특검의 수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시내 면세점 신규사업자 선정이 예정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으나 관세청은 일정을 강행했다. 관세청은 면세점 결정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있었다면 허가를 취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 서울시내 면세점 신규사업자로 선정됐지만 특허권이 취소될 수 있기 때문에 특검수사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에 국한(局限)되지 않는다.

대기업이 선단식(船團式) 경영으로 일반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을 압박하면서 갑을관계로 한국경제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지난 세기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시절 행정부와 밀착하여 각종 특혜와 지원, 로비와 정경유착으로 오늘의 부(富)를 이룬 것이 한국의 재벌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그들의 돈벌이를 용인(容認)한 것은 국부(國富)의 확장이라는 긍정적인 면과 암울한 시대의 반민주적인 분위기 탓이었다.

정주영 같은 탁월한 경영인이자 기업가가 한국경제의 견인차(牽引車) 구실을 해낸 적도 있다. 한국 근대화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경제인으로 정주영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적잖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절대다수 재벌 총수들은 각종 불법-초법-무법-탈법-위법-범법으로 기업의 외형과 자산을 불려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18일 기업의 외면과 정부의 무관심 곳에서 삼성반도체-LCD직업병 피해자 가운데 78번째 사망자가 있었다.

돈벌이에도 격(格)이 있어야 한다. 기업을 뜻하는 `엔터프라이즈`에는 모험심과 진취적 기상 같은 의미도 들어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를 마다하지 않고 용감하게 나아가는 것이 기업가의 기본자세다. 그런 기업가의 모습이 사라진 지 오래다. 편의점과 빵집, 커피에 이르기까지 골목상권마저 쥐락펴락하는 재벌기업들의 치사하고 뻔뻔한 작태(作態)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래서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을 받을 수 없다.

자연생태계에도 먹이사슬 구조라는 것이 있다. 각자 생의 영역을 확보하고 그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자나 호랑이가 토끼나 쥐를 잡아먹는 것은 아주 예외적인 일이다. 그것은 여우나 늑대가 할 짓이다. 하지만 한국의 재벌들은 보란 듯 중소-중견기업들의 팔목을 잡아 비튼다. 그들에게서 상도의(商道義)를 찾는 것은 한국에서 `오로라`찾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가능한 까닭은 반세기가 넘도록 유지된 정경유착에 있다.

우리는 `최순실 게이트`라는 미증유의 현상과 직면하고 있다. 사태의 본질 가운데 하나는 정부권력과 재벌자본이 음습(陰濕)하게 결탁했다는 사실이다. 재벌과 권력이 유착하여 국민세금과 미래기획과 개천의 용꿈을 거덜 내는 후안무치하고 방약무인(傍若無人)한 범죄행위를 발본색원해야 한다. 이제라도 재벌들은 최소한의 품위와 품격을 가지고 돈을 벌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