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저편김병익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교양

신문기자를 거쳐 번역가, 문학평론가, 출판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한국문학의 역사를 함께 해온 원로 김병익(78)씨의 서평칼럼집 `시선의 저편-만년의 양식을 찾아서`(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이 책은 2013년 여름부터 한겨레에 `특별 기고`라는 이름으로 써온 글들을 엮은 것으로, 은퇴 후 마음대로 읽고 쓰고 생각하며 누려온 시간의 기록이다. 이 글들을 써오는 2013년부터 2016년의 시간은 저자가 76세에서 79세에 이르는 시간으로 고요하고 한적한 시간일 듯하지만, 그사이 `나이 듦`의 죄 많음을 증거하듯 고통스럽게`어린 죽음`을 목격해야 했고, 50년 지기 친구를 앞세운 허탈함과 함께 `비수(悲愁)`의 한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저자는 책 읽는 일상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는데, “자유롭지만 방만하며 넓지만 얕고 나직하지만 수선스런 글꼴”이라는 저자의 겸허한 고백은 아마도 그렇게 스쳐온 `현재` 시간을 무겁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특히 저자가 그사이 읽은 70여 권의 목록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그 목록은 소설에서부터 과학 교양서, 경제학 이론서와 생과 죽음을 고백하는 자서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해, 지치지 않는 `탐서`의 마음과 함께 오래 품은 생각도 `책`을 통해 의심하고 자신을 바꾸려는 `배움`의 자세를 엿보게 한다.

아직 연재 중인 시점에서 책을 서둘러 내는 것은 초등학교 동창으로 만난 아내와의 결혼 50주년(golden wedding, 금혼식)을 기념하기 위함이라는 수줍은 고백도 이 책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다.

이 책은 `사유의 도구`로서의 책의 쓰임을 여실하게 담고 있다. 산업화, 과학화, 도시화의 시대에 `발전`을 지지하는 의견과 그것의 위험성을 폭로하는 의견의 책을 고루 읽으며 저자는 이쪽도 옳고 이쪽의 말도 맞다는 딜레마에 부딪힌다. “언젠가 우리는 내핍생활을 하거나 아니면 붕괴의 길을 택해야 할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의 말을 피할 길이 없지만 산업화의 혜택을 과거의 `제로 상태`에서 현재의 `풍요 상태`까지 목도해온 저자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일 것이다.

이렇게 저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모두 경청하듯, 스스로를 긴장의 줄타기로 내모는 독서를 즐기는 것이다. 또한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이끈 독립운동(`이승만과 김구`)을 생각하며 어떤 주의주장도`하나만`이 옳을 수 없다는 것과 아무리 오래 다듬은 생각도 시대에 맞지 않거나 잘못된 점이 발견되면 수정돼야 할 것을 고백기도 하는데, 이런 모습은 저자만의 삶에 대한 정직한 태도와 방식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그이는 오랫동안 최선의 삶을 살았고 일부러 음식을 끊음으로써 위엄을 잃지 않은 채 삶을 마쳤다”(`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는 헬렌 니어링의 고백을 읽으며 무심한 삶을 졸여오는 죽음의 숭고를 실감하기도 한다. `삶의 마침`을 참관하며 “몸의 욕망을 내려놓고 내면의 고요함을 끼워 넣기”를 권하고 이유이다.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죽음은 고통스런 불안이고 일상으로 겪는 노화는 애달픈 불평이어서, 나이 들수록 게으르고 무모해지는 타성에 이처럼 아름다운 평정의 마음을 바라는 것”이 과람한 욕심이라고 말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나이를 거스르려는 괴물스런 노력보다는 고요와 안식을 기도하는 이런 자연스런 노화에서 진정한 생의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다.

/윤희정기자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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