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것은 무엇이며 악한 것은 무엇일까. “좀 더 선하게 살고 싶다.” 흔히 이런 어려운 말들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도 아닌 악도 아닌 그 이전에 “너는 누구인가.” 이는 선종에서의 커다란 가르침의 화두이다. 가끔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은 참 선한 사람이다”라고 듣기만 해도 생각이 정제되고 청소되는 것 같다. “선하다”라는 한 마디가 내 생각의 강력청결 청소제인 것이다.

논어 이인편에 공자께서는 “어진 사람을 보면 자기도 그와 같아야겠다고 생각해야 하며 어질지 않은 사람을 보면 자기도 그렇지 않은가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했다.

어진 사람과 똑같아지기를 생각한다는 것은 자기도 그러한 선함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요, 안으로 반성한다는 것은 자기에게 악이 있을까 두려워 하는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부모를 섬길 때에 부모의 잘못을 발견했거든 은근하게 말씀드려야 한다. 그래도 부모가 내말을 듣지 않으시거든 다시 또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부모의 뜻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느라 아무리 수고로워도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 쉽지는 않다. 공경하는 마음은 효(孝)에서 나온다.”

`견현사제(見賢思齊)`라는 이 네 글자는 오래전 우리들의 집안에 잘 쓰여지지도 않는 큼직한 붓글씨로 쓰여져 귀한 대접을 받던 작품 중에 하나였다. 서예인들의 개인전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고전 글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누구나 부모는 자식의 삶이 이러기를 바라는 간절함에서 였을 것이다. 준엄한 글씨체가 지금도 막살아 나올 것 같은 기운을 오랫동안 가슴에 안고 산다. 글씨는 그 사람의 생각의 그릇이며 기원이며 바람이며 지침이다. 글씨를 보고 산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붓글씨의 묘한 기운인 것이다. 글씨 속에 존재하고 있는 그 위대한 기운은 과학적인 증명 이상 인 것이다.

내가 쓴 글씨는 내 정신의 자양분이 만들어낸 새로운 나인 것이다. `견현사제`의 깊은 뜻을 이른 새벽 기운과 같이 나의 격(格)을 높이고 호연지기를 기르는 내공의 언어로 새겨본다.

몇 년전부터 나는 호선재(好善齋)라는 당호를 쓰고 있다. 선이라는 유교적인 삶에서는 완벽한 이름을 서술하고 있다. 그저 남들의 아름다움과 선행을 본다면 이 난세에 한 번 만이라도 가슴에 새긴다면 사회는 환해질 것이다.

한번쯤 착해져 보는 일은 지구의 전체를 맑게 밝게 불밝히는 일인 것이다.

솔뫼 정현식<서예가·솔뫼서예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