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친구` 포항시와 해병대
(16) 해병대 월남전 파병기

▲ 해병대사령부가 편찬한 `사진으로 본 해병대 50년사(1949~1999)` 161쪽에 수록된 월남전 당시 모습. 당시 청룡부대의 전적을 보도한 기사와 수중에 숨어있는 여자 베트콩 생포사진 등이 눈에 들어온다.

“100명의 적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명의 양민을 보호한다.”

대한민국 건국이래 최초로 외국 원정군으로 파병된 해병대 청룡부대가 신조로 내세운 문구다.

1964년 8월 대한민국 정부는 공산 침략에 직면한 자유월남공화국을 지원키 위해 한국군의 월남파병을 결정했다.

해병대 1개 여단과 육군 1개사단의 파월을 결정한 정부는 1965년 9월 20일 해병대 포항기지에서 해병대1사단 제2연대를 기간으로 해병대 제2여단(청룡부대)을 창설해 파월해병 결단식을 가졌다.

초대 청룡부대장으로 임명된 이봉출 준장은 선봉대를 이끌고 포항역을 거쳐 부산항에서 출항, 1965년 10월 9일 베트남 캄란만에 도착했다.

청룡부대는 미군 1공수사단 제1여단으로부터 캄란만 일대의 전술책임지역을 인수, 같은해 11월 4일 까두산 작전을 실시해 부숑비행장을 위협하는 적을 소탕해 18년동안 베트콩(베트남 공산군)의 아성으로 군림한 까두산을 탈환했다.

같은해 12월 16일 캄란 동북쪽 투이호아로 이동한 청룡부대는 이듬해 1월 1일 파월 이래 최초로 전개한 여단급 탐색작전인 `청룡 1호작전`을 펼쳐 베트콩의 해상보급 추진기지인 봉로만 일대에 주둔하던 적군 1천500명을 소탕하는 성과를 냈다.

이 작전을 통해 봉로만을 경유해 북쪽 퀴논으로 통하는 1번도로를 개통시키고 월남 3대 곡창지대인 휴송평야를 확보해 주민들의 식량난을 해결하는데 기여했다.

청룡 1호작전과 함께 청룡부대 10대 작전 중 하나인 `짜빈동 작전`도 혁혁한 성과를 낸 전투 중 하나였다.

1967년 2월 14일 오후 11시 20분부터 이튿날 오전 7시 24분까지 펼쳐진 이 작전은 청룡부대 3대대 11중대가 인해전술을 펼친 월맹정규군 제2사단 1연대, 21연대 및 지방게릴라 1개대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작전이었다.

11중대 장병 191명은 수백여명이 기습공격을 펼친 베트콩을 전술기지에 구축한 교통호를 이용, 일제사격과 수류탄·크레모아 폭발로 격퇴했다.

당시 아군 15명이 전사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했으나 적군 243명을 사살하는 뛰어난 공을 세우며 중대 전원이 일계급 특진의 영예를 얻었다.

이후에도 청룡부대는 1972년 2월 29일 제5진 철수가 완료되기까지 6년 5개월간 총 3만7천304명을 베트남에 파병해 여단급 작전 66회, 대대급 작전 109회, 소부대급 작전 15만1천347회를 전개해 적군 9천619명을 사살하고 1천256명을 포로 또는 귀순자로 삼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또한 구호물자 8천810t을 지원하고, 현지 민간인 40만3천729명에 대한 교육지원, 건물 1천593동에 대한 건설지원을 실시하는 등 대민봉사활동도 함께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2천702명이 다치고 1천76명이 전사하는 아픔도 있었으나 한국군의 전투력을 국내외에 과시하고 침체된 국가 경제활성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렇듯 오직 국가를 위해 이역만리 타국에서 젊음을 바친 참전용사들을 영원히 기억속에 남기기 위한 월남참전 기념비를 해병대의 본거지이자 월남파병 결단식이 열린 역사적 장소인 포항시에 건립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도심공원 등 접근성이 뛰어난 장소에 별도로 기념비를 세워 해병대 예비역과 지역민, 관광객들까지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

이와 관련 월남 참전용사 서모(77)씨는 “서울, 대구, 울산 등 대도시 뿐만 아니라 경남 창녕, 거제, 경기 이천, 의정부, 전남 남원, 강원 양구 등 전국 10여곳에 월남참전기념비가 건립돼 있지만 해병도시인 포항에는 별도의 기념비가 없어 안타깝다”며 “해병대 출병식이 열린 옛 포항역에 공원이 조성될 예정인 만큼 포항시와의 협조를 통해 월남참전기념비를 마련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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