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한식<br /><br />제2사회부
▲ 심한식 제2사회부

경산시 저상버스 문제를 취재하면서 선조들이 즐겨 사용하던 `우리`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다. 이런 생각에 빠진 것은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고 부담이 되는 저상버스 구매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경산버스 경영진의 의지 때문이다.

현재 경산지역 시내버스 대수를 고려하면 앞으로 필요한 저상버스는 30대다. 이 대부분을 경산버스가 사들일 예정이며 어쩌면 30대 전부를 경산버스가 사야 할지 모른다. 경산지역을 함께 운행하고 있는 A업체가 저상버스 도입에 주저하고, 2016년에 배정된 저상버스에 대해서도 구매 의지가 없어 경산버스가 저상버스 5대를 12월 말까지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선조가 사용하던 우리는 `우리 민족` `우리나라` `우리 집` 등 모두를 수용하는 것으로 `우리 집`도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 정을 나눌 수 있고 나그네에게도 개방된 곳으로 가족에게만 한정된 공간이 아니었다.

선조들이 사용한 `우리`의 의미는 모두를 포함하는 거대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우리`는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피아(彼我)를 나누는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내 편만 우리의 범주에 들게 됐고, 거대하고 아름다웠던 우리는 왜소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로 전락했다.

경산버스가 저상버스를 구입해도 경산시로부터 받는 추가 인센티브는 없다. 이를 고려하면 경산버스 경영진의 결단은 넓은 의미의 `우리`를 실현하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이라 해도 회사의 재정적 손해를 감수하면서 타인(시민)을 배려하기는 쉽지 않다. 가진 자일수록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철저한 개인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경산버스 경영진의 의지는 기자에게 `너는 어느 쪽의 우리에 속하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입으로는 우리라고 이야기하면서 뒤로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가족끼리도 법정다툼을 한다.

나만을 고집하는 경직된 우리가 아닌 타인을 배려하는 진정한 `우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오늘이다.

경산/shs1127@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