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민음사 펴냄·장편소설

엄마를 뜻하는 `맘(Mom)`과 벌레를 뜻하는 `충(蟲)`의 합성어인 `맘충`은 제 아이만 싸고도는 일부 몰상식한 엄마를 가리키는 용어다. 그러나 `맘충`이란 호칭은 육아하는 엄마 대부분에게 무차별적으로 사용되며 많은 여성들에게 공포심을 주고 상처를 안겼다. 뿐만 아니라 이 표현은 육아가 마치 여성의 일인 것처럼 인식되게 함으로써 성차별적 시선을 고착화하는 데도 일조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은 2014년 말 촉발된 `맘충이` 사건을 목격한 작가가 여성, 특히 육아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에 충격 받아 쓰기 시작한 소설이다. 소설을 쓸 당시 작가는 유치원 다니는 자녀를 둔 전업주부였다. 온라인상에서 사실 관계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만 놓고 엄마들을 비하하는 태도에 문제의식을 느낀 작가는 지금 한국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이 과거에서 얼마나 더 진보했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질문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다.

슬하에 딸을 두고 있는 서른네 살 김지영씨가 어느 날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인다.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친정 엄마로 빙의해 속말을 뱉어 내는 통에 시댁 식구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드는가 하면 남편의 결혼 전 애인으로 빙의해 그를 식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남편이 김지영씨의 정신 상담을 주선하고, 지영씨는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소설은 김지영씨의 이야기를 들은 담당 의사가 그녀의 인생을 재구성해 기록한 리포트 형식이다. 리포트에 기록된 김지영씨의 기억은 `여성`이라는 젠더적 기준으로 선별된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발화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녀가 선택한 이야기들이 바로 일생에 거쳐 `여자이기 때문에 받아 왔던 부당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의 고백은 1999년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되고 이후 여성부가 출범함으로써 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이후, 즉 제도적 차별이 사라진 시대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내면화된 성차별적 요소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 준다. 지나온 삶을 거슬러 올라가며 미처 못다 한 말을 찾는 이 과정은 지영씨를 알 수 없는 증상으로부터 회복시켜 줄 수 있을까?

상담은 자기 고백 형식으로 이뤄진다. 이 소설의 백미도 김지영씨의 자기 고백을 중심으로 드러나는 세밀한 심리 묘사다. `그때 그 상황`에서는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차분히 쏟아 내는 그녀의 말들은 `김지영`을 이 시대 여성의 대변자로 삼기에 충분할 정도로 자세하고 보편적이다. 더욱이 김지영의 이름은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의 삶을 보편적으로 그리기 위한 작가의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실제로 1982년에 태어난 여아 중 가장 많이 등록된 이름이 `지영`이기 때문이다. 김지영이라는 개인의 고백을 30대 여성, 나아가 이 시대 여성들의 고백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

조남주 작가는 2011년 지적 장애가 있는 한 소년의 재능이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삶의 부조리를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 `귀를 귀울이면`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신작 `82년생 김지영`에서 30대를 살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보편적인 일상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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