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호<br /><br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학교에서 좋은 친구와 점심을 먹기 위해 교내 캠퍼스를 걸어 베트남 쌀국수집으로 향했다. 학교는 넓은 편이고 점심식사 삼아 조금 멀리 걸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식사 후에도 부담이 없다.

음대, 미대가 있는 곳으로 해서 경영대 건물 지나 언어교육원 넘어가야 쌀국수집이 있다. 대운동장을 왼쪽으로 놓고 오른쪽으로 꺾어 순환도로 쪽으로 향하는데 일군의 젊은이들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두 줄로 죽 늘어선 젊은이들이 들고 있는 피켓 글자들을 다 합쳐 읽어보니 그들은 비학생 조교들. 학교에는 조교라는 `독특한` 직종이 있는데, 일선 행정에 관한 많은 일을, 잡다한 일까지 모두 챙기는 어렵고도 괴로운 일을 한다. 없어서는 안 되고 그만큼 요긴하게 쓰이는 사람들이지만 대학의 일상 속에서 그 존재 가치가 가장 쉽게 부정되는 직함이기도 하다.

학교마다 이 조교를 `쓰는` 방식은 같지 않다. 대학원생을 조교로 채용하는 경우도 있고 대학 출신의 일반인을 채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거의 대부분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이다. 대학원생 조교는 그래도 공부가 주업이라고 생각하고 선생과도 사제관계가 있어 일시적으로 지나치는 과정으로 생각하면 그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이 조교가 일반인이고 앞으로도 직장을 계속 구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비정규직이냐 정규직이냐가 아주 큰 문제고, 같은 비정규직이라 해도 어떤 처우를 받느냐가 또 작지 않은 문제다.

점심시간에 때를 맞추어 피켓을 들고 나와 무엇인가를 외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나와 거친 목소리로 항의를 하고 구호를 외치고 심지어 절규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다른 나라도 그런 일이 많은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 나라는 그런 일이 미국보다도 일본보다도 유독히 많은 것을 사람들은 안다.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그런 모든 문제들의 연장선상에 있고 그 모든 일들의 위에 있고 가장 저층에 있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 12일 서울에서는 백만의 사람들이 모였고 19일에도 전국에 백만 인파가 여기저기 모여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날 서울에 모인 인파는 지하철 이용 통계를 적용해 볼 때 75만인가가 모였다고 했다.

이번 주 토요일에도 서울에 다시 사람들이 운집한다고 한다. 신문방송을 보니 이번에 예상되는 숫자는 지금까지 모인 사람들의 두 배는 되리라고 한다. 비가 오거나 한파가 몰아치지 않는다면 정말로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로 들어가는 이 초입에 숱한 사람들이 고생하지 않으려면 나라 차원에서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 판이다.

도대체 왜 이 나라에서는 모든 일이 이렇게밖에는 해결되지 않느냐는 말이다. 항의하고 몸부림치고 절규를 하고 차벽 위로 올라가고 젊은 전경들이 하루 종일 도시락 하나 까먹고 박스 채로 배급된 콜라를 마시면서 시위대를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는 이 사태를 겪어야 나라가 정상화될 수 있느냐 말이다.

그냥 상상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날 19일 경복궁역 앞에 있는`이상의 집`에서 열린 이상문학회 학술 세미나에 참석했다 저녁을 먹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경복궁역부터 사직터널 쪽으로 버스 차벽이 긴 줄을 이루어 사람들의 통행을 막고 있었고 그 차벽 너머에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들렸다. 나는 본의 아니게 그 차벽으로 나뉜 세상의 이편에 있었고 젊은 전경들의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었다. 그들의 무표정은 그들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전혀 기꺼워하지 않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도대체 왜 기본을 지켜 주지 않느냐 말이다. 조교라면 이 정도는 처우해 줘야 하고 민주사회라면 이 정도는 지켜야 나라가 운영될 수 있다는 그런 상식을 왜 도대체 저버리느냐 말이다. 가이드라인이라는 말은 왜 엉뚱한 곳, 나쁜 일을 하는 데서나 사용되느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