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흔히 천하제일의 책이라 하고 “최상지극우주제일(最上至極宇宙第一)의 책”이라고 한다. 읽을수록 알듯하면서도 좀체 가늠할 수 없는 그 깊이를 가지고 있다. 여름에 읽는 논어와 겨울에 읽는 논어의 깊이가 다르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일까. 맹자는 여름에 읽으면 속이 시원해지고 논어는 겨울에 읽으면 따뜻해지고 대학과 중용은 아침에 읽으면 맑아진다고 하니 참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공자께서도 학문에 대한 즐거움을 이렇게 정의하셨다. “즐거움도 근심도 잊어 자신이 늙어감을 모른다”라고. 즐거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살면서 가식없이 기쁘고 슬플 때도 있겠지만 기쁨, 슬픔, 근심, 희망도 모두가 작위에 의한 마음의 조작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이른 새벽이 편치않다. 사람의 생이란 기쁨이 한 말이며 슬픔과 근심은 몇 말이나 될까. 작기를 바라겠지만 학문을 탐구하고 지적인 삶을 살고 싶어하는 바람과 노력만큼 사람은 방황하게 된다.

그렇지만 모르는 것을 단순히 알게 되는 경우의 기쁨보다 세월이 흘러 더 깊어져서 스스로 알게되는 기쁨은 느껴보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공자께서 솔직하게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고 하신 솔직함에 위선으로 사는 우리 모두 대성통곡하고 대오각성해야 할 일이다.

학문이란 정진할수록 끝이 보이지 않으며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 흐뭇함에 젖어들면 배고픈 줄도 모른다 하신 공자의 학구열을 가진 도반들이 가끔 주변에도 있다.

잘 배워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바치는 이도 있고 이용해 큰 도둑이나 되는 속된 사람들도 많이 있다. 아는 것이 힘이 되기도 하지만 세상에 독이 되는 경우이다. 아인슈타인도 “안다 해도 다 알 수 없고 알고 있다 해도 다 아는 것 아니다”라는 말에 고개 숙여진다.

오직 나는 내 서예술의 더 나아감의 완성과 완벽을 위해 좋은 사람 만나 배우고 시간이 주어지면 몇 권 성현들의 책을 만질 뿐이다. 생각이 많은 날은 동네 시골길을 걸으면서 그들의 가슴으로 파고 들어본다.

세상살이 철도 들지않은 채 끝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살다 웃다 슬퍼하다 종지부 찍는 것이 인생이다. 별 것 아니다. 큰 세상을 위해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베풀고 봉사하고 환원하는 것이 가장 큰 공부이다.

내 작품 한 점에 나의 인생공부 전부가 실린다고 생각하면 붓질 한 번 나의 진면목인 것이다. 걱정과 근심 즐거움도 가늠할 수 없는 모두 나의 공부가 만들어낸 한 물건인 것이다.

솔뫼 정현식<서예가·솔뫼서예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