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상강(霜降) 지나고도 밋밋하던 날씨가 부쩍 차갑다. 춥다하기에는 이르고, 쌀쌀하다 하기에는 냉한 기운이 제법이다.

길을 걷다가 양버즘나무 이파리를 주워든다. 상기도 초록을 잃지 않은 이파리가 색 바랜 낙엽들 속에 처연했다. 낙엽으로 지기에는 너무 이른 상실이 가슴속 깊이 다가온다. `세월호`에서 스러져간 250명 어린 녀석들 같아서 마음이 짠하다. 어쩌다가 우리는 그 많은 아이들을 죽였는가?! 나이든 축들의 무한반성이 절실한 참사 아니었나?!

나라 곳곳이 폐허(廢墟)가 되어간다. 인공지능과 3차원 인쇄기, 로봇과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가 빛처럼 빠르게 일상화되는 21세기.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눈부시게 현현(顯現)하는 2016년에 대한민국은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다. `혼(魂)이 비정상인 무녀(巫女)`가 칼춤 추고 그 무당의 진언(眞言)에 의지해 권력을 휘두른 대통령!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대한민국의 `혼을 정상으로` 돌리겠다는 대통령을 떠받들던 자들의 끝 모를 행악질.

필시 그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것 또한 지나가리니!” 승승장구하던 다윗이 총명한 아들 솔로몬에게 자경(自警)하려는 뜻에서 구한 지혜 “그것 또한 지나가리니.” 어떤 위대한 승리와 장엄한 업적과 빛나는 명성도 시간과 더불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다. 같은 이치로 우울한 패배와 졸렬(拙劣)한 수치와 저급한 실패 또한 시간이 흐르면 망각되는 법! 아마도 그들은 생각하리라. “38일만 지나면 모든 걸 잊어버리는 궁민(窮民)을 믿어보자!”

허나, 요즘은 스마트폰 세상이다. 어제는 어제로 죽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스마트폰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나온다. `촛불시위`에 참가한 여성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눈물 글썽이고 있었다. 그녀가 애도(哀悼)하는 `민주공화국`을 위하여 수만의 촛불들이 거리와 광장에서 환하게 타올랐다. 권력자는 그 의미를 알고나 있을까?!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이란 “백성이 주인이며, 모든 사람들의 입에 쌀이 들어가는 나라”다. 그러나 보라! 2016년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인지, 생각하고 돌아보라. 백성들은 그저 지나가는 길손이거나 적선을 바라는 거지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담뱃값을 2천원 올려도 감읍(感泣)하고 받아들이는 개돼지 하인배가 아닌가?! 누가 이 나라의 실질적인 주인이었는가, 살펴보라. 찌질한 궁민들이 낸 세금으로 그들이 무슨 짓을 해댔는지 돌이켜보라.

잘 만들어진 각본에 따라 꼭두각시나 괴뢰(傀儡)처럼 권부(權府)의 시중이나 들던 자들을 상전으로 모셨던 그자들은 되뇔지 모른다. “그것 또한 지나가리니!” 그렇게 날려버린 허다한 역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동학농민전쟁, 3·1만세운동, 4·19혁명, 5·18광주항쟁, 87년 민주화 대투쟁을 우리는 낱낱이 기억한다. 얼마나 많은 청춘들을 민주공화국의 제단(祭壇)에 바쳤는지, 우리 모두는 어제처럼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기대하지 말라!

“그것 또한 지나가리니!” 이것은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을 위한 언어가 아니다. 이것은 승냥이들과 악어들과 이리떼를 위한 언어가 결코 아니다. 이것은 한시권력에 의지해 민주주의를 짓밟고 시민들의 영혼을 도륙(屠戮)한 망나니들을 위한 언어는 더욱 아니다. 이것은 민주공화국을 위해 산화(散華)해 간 고귀한 영령들을 위한 언어다. 부패 무능 타락 패거리주의로 무장한 권력자와 하수인들의 한시적인 지배가 지나갈 것이라는 확신의 언어다.

양버즘나무 낙엽을 보면서 계절의 순환과 권력의 무상(無常)을 독서한다. 다가올 엄동설한과 냉기 가득한 북풍한설과 칼바람을 떠올린다. 하되, 시련이 없으면 따사로운 봄날의 훈풍과 훈향은 기꺼운 것으로 오지 않으리. 하여 우리는 굳게 믿는다.“그것 또한 지나가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