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무슨 얘긴가 끝에, 그 사람이 시험 잘 보는 재주가 있어, 그 시절에 고등학교를 거기를 들어갔다는 말이 나왔다. `시험 잘 보는 재주`라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아 유심히 듣고 생각하게 됐다. 사람을 말할 때 그렇게 평하는 방법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런 식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도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시험 잘 보는 재주`라. 보통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공부를 잘해서`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지 않고` 시험 잘 보는 재주가 있어서`라고 말한다면, 공부 잘하는 것과 시험 잘 보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뜻이 된다.

생각할수록 과연 그렇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시험 날 이상하게 시험 못 보는 사람이 있다. 심장이 약해서 그럴 수도 있고 운이 나빠서 그럴 수도 있다. 평소에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시험만 보면 망치는 바람에 인생길이 잘 풀리지 않게 된 경우도 여러 번 본다. `심청전`의 심봉사 같은 사람도 워낙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건만 과거만 보면 낙방을 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시험 잘 보는 재주`라는 것은 이런 식으로만 생각할 것만은 아니다. 시험은 잘 볼지 모르지만 공부까지 잘한 것은 아니라는 뜻을 담고 있을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즉, `시험 잘 보는 재주`가 있었다 함은 얼마든지 그가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뜻을 함축할 수 있는 말이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시험 보는 것과는 꼭 같지 않을 것이고, 시험에서 묻는 범위와 수준을 넘어서 공부라는 것이 이루고 있는 학문적 깊이와 넓이를 확보하고 있음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시험 잘 보는 것과 별개로 알아야 할 것을 넓고 깊게 아는 사람이다.

그러면 여기서 한 번 더 나아가 본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대개 시험을 잘 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말도 할 수 있다. 그 사람이 `공부 잘 하는 재주`가 있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얻고, 또는 고시에 합격에서 이렇게, 저렇게 되었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이 말은 또 어떤 의미를 담는가.

`공부 잘 하는 재주`라는 말은 `공부 잘 하는` 것이 `재주`가 될 수 있음을 전제하는 말이다. 이때 그럼 재주란 무엇이냐. 그것은 타고나는 개성의 하나로 무엇인가를 잘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니까 `공부 잘 하는 재주`란 사람이 타고날 수 있는 많은 재주 가운데 유독 공부를 잘하는 재주를 타고 났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별 것 아니다. 공부 잘 하는 재주 안 가진 어떤 사람은 일 잘 하는 재주를 타고날 수 있고 사람 보는 재주를 타고날 수 있고 공 잘 다루는 재주를 타고날 수 있다. 심지어는 남 잘 속이는 재주도 타고날 수 있다.

공부가 한갓 재주에 불과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공부 잘 하는 사람이 더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가에 관심을 돌릴 수 있게 된다. 공부 잘 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는 그다지 대단할 게 못 된다. 아니, 물론 그것도 대단하기는 하다. 그러나 대단한 것이 다 훌륭한 것은 아니다. 공부 잘 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그것 이상의 덕성이 더욱 더 필요하다.

요즈음 이 `공부 잘 하는 재주`에 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라를 망치고 사회를 괴롭히고 사람들을 못 살게 구는 이들 중 상당수가 이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 재주를 좋은데 안 쓰고 자기와 자기가 친한 사람들만을 위해서 쓰는 사람들이다. 공부 잘 하는 재주를 가진 것이 곧 훌륭한 것이 아님을 깨닫지 못하고 그 재주를 가졌기 때문에 자신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공부 잘 하는 재주`를 갖지 못한 보통 사람들, 그러나 다른 영역에서나 삶을 살아가는 태도 면에서는 훨씬 더 훌륭한 사람들이 보면 자다가 웃을 일이다. 아니, 기가 막혀 웃음도 안 나올 재주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