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다른 사람을 아는 것과 알아준다는 것은 별개(別個)의 사안이다. 안다 함은 정보나 인식에 근거해 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다. 알아준다 함은 아는 것에서 나아가 그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인정함을 뜻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인정심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어린아이가 까닭 없이 울 때에는 인정심리 기제가 작동했을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왜 날 버려두는 거야?”

여기 문제적인 인물이 있다. 공자다! 그의 사유와 인식은 첫 머리부터 범상치 않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아니하니 그 또한 군자 아니겠는가?!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논어, 학이 편)” 나는 이것이 `군자삼락(君子三)`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문구라고 생각한다. 노나라를 떠나 십여 년 천하를 철환했으나 아무도 자신의 쓰임새를 인정해주지 않은 비정(非情)한 세태에 답한 공자의 의기(意氣)와 자신감 아닌가?!

나이 삼십에 홀로서기에 도달했던 공자가 35세에 노나라의 환란으로 제나라로 피신한다. 그가 비범한 인물임을 알고 있던 경공이 정사(政事)의 요체를 묻는다.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비가 아비답고 자식이 자식다워야 합니다. 君君, 臣臣, 父父, 子子”(안연 편) 군주와 신하가 제 노릇을 다하면 나라가 안정될 것이오, 아비와 자식이 근본을 다하면 가정이 평안해질 것이라는 간명한 답변. 청년 공자의 지성이 번뜩이는 장면이다.

하지만 경공은 재상 안자(안영)의 반대로 공자를 기용하지 못한다. 공자가 주창하는 법도가 너무 번거롭고 어려워 백성들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라는 안자의 진언(進言)을 경공은 무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로 공자가 내세운 예법은 500년 전 서주(西周)의 케케묵은 구습(舊習)이었다. 오래 전에 흘러가버린 강물로 오늘의 발을 씻으려 했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 여기서 우리는 시대착오적인 보수주의자 공자의 면모를 확인한다.

그러하되 공자는 더 나아간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말고 내가 그들을 알지 못함을 근심하라.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학이 편)” 남에게 인정받기를 꾀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그들을 수용하고 인정하라는 적극적인 자세를 강조한다. 어디 그뿐이랴!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말고 능력이 없음을 근심하라. (不患人之不己知, 患其不能也·헌문 편)” 이 정도 배짱과 자신감을 가졌던 인간 공자!

권력자와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보다 그릇된 것은 내가 그들을 알지 못함이오, 나의 무능이라고 갈파했던 공자. 2천500년 전 그의 생각은 이른바 광속의 2016년에도 적용 가능하지 않을까. 내 남 할 것 없이 권력자와 부자에게 잘 보여 한 자리 하려는 부박한 세상에서 꼿꼿하게 뻗대는 사람 한 둘 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나를 알아주기 전에 내가 먼저 그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는 천박한 세태가 지배하는 `헬조선`의 만화경!

작은 고기조각이나 뼛조각 물고 승냥이처럼 울부짖으며 호가호위하는 환관과 비선의 나라. 그 한 줌의 무리에게 아부하고 권력자의 치질을 빨아주며 (`장자`, 열어구) 돈주머니와 벼슬자리에 환호작약하는 자들이 넘쳐나는 `헬조선`. 멀쩡한 농민 죽여 놓고 사인 (死因) 찾겠다고 시신에 칼질을 해대려는 후안무치한 무뢰배들의 천국.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아우성치는 청년들을 절망과 한숨의 나락으로 인도하는 저승사자들의 파라다이스!

막돼먹은 나라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상상이상의 고통이다. 부패와 타락과 무능과 패거리주의로 무장한 일군의 야수들에게 수족과 영혼을 저당 잡힌 채 눈만 껌벅이며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공자는 이런 시국에는 몸을 숨기라고 했지만, 광명천지 21세기에 어디로 잠적한단 말인가?! 이러매 눈 감고 다시 생각할 밖에!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근심하지 아니하는 도저한 경계를 찾아봄이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