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전라남도 해남이라, 언제 가봤던가? 대학원 석사 때쯤, 1990년이나 1991년? 아니 박사과정때인 1994년쯤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기억은 십 년 단위, 이십 년 단위다.

시인 황지우가 해남 앞바다가 고향이라고 해서, 해남 대흥사 앞 민박촌에서 발표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사람들이 진도 홍주라는 술을 어지간히 비웠다.

그리고는, `공식`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디 가다 들른 적은 있어도 해남 땅을 목적지 삼아 가본적 없었다.

고산 윤선도를 기리는 문학상에 이지엽 시조 시인과 송경동 시인이 올해의 수상자, 인문학 콘서트라는 것의 사회를 본다고 갔다.

오후에 사회 보고 토속음식점에 가서 저녁 먹고 버스 두 대들이 축하객 모두 대흥사 쪽으로 실려 갔다.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다. 또 대흥사라. 좋은 절인 것 알지만 밤에 절구경 할 수도 없고.

문학평론하고 시도 쓰는 권성훈 선생 대동하고 무작정 도로 해남으로 차를 얻어타고 나온다. 나오며 시장을 찾으니 해남매일시장이라는 게 인터넷에 뜬다.

막걸리는 역시 장터가 제격, 둘이 의기투합해서 장터 주변 막걸리집을 찾기 시작한다.

헌데, 분명 해남 땅인데, 쓱 하고 눈앞에 나서는 간판,`영일만`이라니. 어라, 포항? 하면 역시 포항은 아니고. 궁금증 안고 문을 쓱 열고 들어가기는 갔는데. 자리가 꽉찼다. 홀에도 손님들, 방들 앞에도 신발이 즐비.

아쉬움 안고 다른 집을 찾는데, 그중엔 또 `고래사냥`도 있고, 그밖에도 이런 이름, 저런 이름 술집들이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영일만` 쪽이 아쉽다.

매일시장 주변을 한 바퀴 빙 돌아 도로 `영일만`으로 돌아가나, 자리가 그렇게 급히 생겼을 리 있나. 아주머니가 성미 급한 나를 단념시키느라 자리가 비어도 먼저 와 연락 기다리는 팀까지 있단다.

- 어떻게 안될까요? 그냥 맨바닥에 앉아서라도 먹게 해주세요.

이건 숫제 동냥 다니는 심봉사처럼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이 애소를 드리는데,

- 어이, 그럼 이짝에 와 앉아 먹소.

하고,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있다. 보니, 꽤 넓은 탁자를 차지하고 식사에 반주를 하고 계시던 선배님들 두 분. 소주가 네 병이나 비었으니 술 실력 알 만하다.

어쨌거나 반가운 마음에 염치불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드리며 모퉁이 자리에 착석 성공이다.

이런 경우도, 살다 보면 있다. 헌데 아뿔싸. `영일만`에는 막걸리가 없단다. 어떻게 하나. 하지만 분명 이집이 맛집은 맛집일 텐데 물러설 수 없다. 소주 끊은 지 삼 년만에 작심하고 마시기로 작정하고,

- 이 분들 드시는 거 주세요.

한다. 그리고는, 선배님들 향해 무슨 물고기냐 물으니, 삼치란다. 고등어회는 봤어도 삼치회 먹어본 기억은 없는 듯도 하고.

드디어 우리가 시킨 삼치회에 소주 두 병 나왔고, 감사의 표시로 소주 한 병은 이 분들께 드리고.

시키는 대로, 넓적하게 썬, 김 구워 나온 것에, 삼치회를 한 점 올리고, 오모리 김치 짠 것을 적당히 올리고, 된장에 마늘 다진 것도 얹고, 또 시키는 대로 뚝배기 쌀밥 지어온 것도 쬐금 얹고, 마침내 입안으로 쓱, 가져가니.

호남 사투리로, 옴마, 이게 무슨 맛이당가.

입안에서 살살 녹기로는 이만한 걸 먹어본 적 없었다는 거다. 짠 김치가 삼치회와 이팝에 어울리니 아무렇지도 않고, 비리지도 않고, 달지도 않고, 맵지도 않고. 한 점, 두 점, 자꾸 입으로 들어간다.

고향이 영덕인 권성훈 선생, 호남 `적지`에 들어온 긴장감 풀지 못했건만, 삼치회 자꾸 들어가니 저절로 입이 풀리고 술을 권하고 전화번호까지 따버리는 모험을 감행한다. 그야말로 가관!

아무리 농담이라도 `적지`라 한 것은 지나치고, 아무튼, 그분들은 쌀농사 짓는 분들. 요즘 내려가는 건 쌀값밖에 없다면서도, 전화만 주면 `봉황미`(이게 엄청 좋은 쌀이란다) 10㎏는 부쳐들 주시겠단다, 공.짜.로.

뭐냐시렸다? 해남 `영일만`도 포항 영일만처럼 좋디 좋더란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