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1837년 2월 10일 러시아 최초의 계관시인 푸쉬킨이 죽었다. 니콜라이 1세의 최대 정적으로 떠오른 시인은 감시와 추적에 시달린다. 정치경찰 벤켄도르프, 문단권력자이자 극작가 쿠콜리니크, 주 러시아 네덜란드 공사 단테스 같은 자들이 승냥이처럼 푸쉬킨 주위를 배회했다. 그자들은 하나같이 니콜라이 황제의 자동인형이었다. 시인을 모욕하고 분노케 하여 마침내 그로 하여금 결투를 신청하도록 유도한 단테스.

2016년 9월 25일 보성의 농민 백남기가 운명했다. 향년 70세. 2015년 11월 14일 어리석은 국가에 저항하는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그는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차가운 길거리에 내동이쳐진다. 그 후 317일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가 9월 25일 불귀의 객이 되고만 것이다. 국가 공권력의 대명사라 할 경찰은 백남기 농민을 겨냥하여 물대포를 직수하였다. 그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졌던 그가 세상을 버린 것이다.

그러나 보라.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국가가 농민과 그 유가족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국가는 이미 죽은 농민의 시신에 칼을 들이대고자 한다. 명확한 사인을 규명한다는 미명 아래, 과학수사라는 명분으로 칠십 노인의 차디찬 육신에 칼질을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안다. 농민이 어떻게 죽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농민을 부검하지 않아도 그를 죽인 것은 경찰이고 국가라는 자명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179년 전 시인의 죽음은 치밀한 각본에 따른 연출이었다. 니콜라이 연출, 단테스 주연, 벤켄도르프와 쿠콜리니크 조연. 그리고 희생자는 계관시인 푸쉬킨이었다. 그의 아내 나탈리야 곤차로바를 궁정연회에 초대하고자 니콜라이는 시인을 자신의 시종보로 임명한다. 러시아인들에게 황제보다 더 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시인을 향한 황제와 측근들의 시기와 질투, 음모는 나날이 커져갔고, 급기야 시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2015년 11월 14일 왜 백남기 농민은 노구를 이끌고 민중총궐기에 참가했을까?! 국가와 그 대표자들의 부패와 무능과 타락과 패거리주의를 경고하고, 민중의 분노와 절망을 세상에 알리고자 함이 아니었던가?! `헬조선`이 되어버린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에 통곡하던 농민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수수방관하는 촌로가 아니라, 민중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처절한 나라의 현실을 바로 잡아보고자 차가운 거리로 나아간 것이었다.

불의하고 타락한 자들이 줄줄이 고관대작의 지위에 오르고, 바른말하고 행실 올바른 사람들은 거리로 내몰리는 나라. 40~50대에 실직하여 생계형 창업을 하고 이내 망해버리는 나라. 70~80대 노인들이 거리거리마다 폐지와 빈병을 주워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나라. 명절 때마다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 나라. 백주대낮에 국가권력을 돈과 바꿔먹는 검사와 판사의 나라. 십 년 넘도록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

백남기 농민은 이런 참담하고 또 참람한 나라 형편을 참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도탄에 빠진 국가와 민중을 구하겠다는 따사로운 일념으로 궐기한 것이다. 그러나 부패하고 타락한 국가는 그를 향해 차가운 물줄기를 쏟아냈다. 얼음보다 차가운 길거리에 쓰러진 그를 향해 연신 물줄기가 발사되었다. 제 나라 백성을 죽이겠다는 심사가 아니라면 어찌 이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더란 말인가?!

푸쉬킨의 시신을 도둑질하려던 권력자들의 음모는 페테르부르크의 분노한 시민들의 봉기로 저지되었다. 10만의 시민들이 그를 추모하며 장례행렬에 동참했다. 백남기 농민의 시신에 칼질을 하려는 국가권력에 한국의 시민들이 저항하고 있다. 그로 하여금 저승에서라도 영면하도록 수많은 시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국가에 항거하고 있다. 시인은 죽어서 문학으로, 농민은 죽어서 따사로운 눈길과 마음으로 민족과 국가를 보듬을 것이다. 아주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