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승현 김천시선거관리위원회 지도주임

선관위가 늘상 선거만 치르는 건 아니다. 선거 후 긴 비선거철을 지난다. 이 시기 선관위는 직원 자질향상 교육으로 기초체력을 다지고 민주시민교육 등으로 공명선거의 기반을 조성한다.

어떤 날은 팟캐스트를 청취하다 자료제출 요구에 대한 피감기관의 소극적 태도로 골머리를 앓는 국회의원 보좌관의 하소연을 듣게 됐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화가 치밀었다. 그런데 분노의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내가 `피감기관 직원 입장이라고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졌다. 겪어봐서 알고 겪어보지 않고도 알게 하는 동병상련의 위력이다.

조합장 보궐선거를 치르고 있다. 필자는 안내·예방을 전제로 하여 위법행위를 감시·단속하는 지도 업무를 맡고 있다. 이번 선거가 전 조합장의 기부행위 때문에 치러지는 탓에 후보자, 조합원 모두 금품 제공의 후과(後果)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 유혹을 이겨내리라는 합리적인 전망을 선거과정 초입에 해봤다.

그런데 선거 정황을 파악하는 중에 놀라운 얘기를 듣게 됐다. 기부행위로 인한 고발의 경우에 비난의 화살은 금품 제공자가 아닌 신고자에게로 향하고 기부행위자가 당선된 경우에는 그 화살촉의 예리함이 더해진다는 것이다.

순간 내 머리에 30년 전 서울 도봉구의 선거 풍경이 떠올랐다.“○○○가 버스로 사람들 태워간대”, “△△△는 □□식당에서 밥 샀다던데”. 주변 어른들이 아버지에게 했던 말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상전벽해의 변화가 있었던 건 분명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어보인다. 금품 제공 결과의 혹독함은 많이들 인지하고 있는 반면 그런 행위에 대한 도덕적 감수성은 아직 덜 자란 탓이다.

“선거에서 돈 좀 바라는 게 어때서?”와 같은 말엔 공감도 동의도 할 수 없다. 기부행위는 유권자의 표심을 왜곡하는 병폐일 뿐이다.

금품 선거에 대한 온정적 인식을 뿌리 뽑기 위해 또 다른 반세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선관위 직원으로서 시민의식을 높이는 계도 활동에 힘쓰고, 선거철엔 불법을 저지른 자가 열매를 따먹는 일이 없도록 제대로 단속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